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온실가스 감축엔 국경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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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극 지방과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태풍.허리케인이 갈수록 거세진다고 야단이다. 전염병이 늘고 야생 동식물의 생존도 위협받고 있다. 석탄.석유를 태우면서 온실가스를 내뿜어 지구가 더워진 탓이다. 전문가들은 몇 년 내에 국제 사회의 결단과 실행이 없다면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달 28일 미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기후 변화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6개국 파트너십'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환경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오히려 기후 변화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정부에 협정 탈퇴를 촉구했다.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는 강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유다. 더욱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 나라가 똘똘 뭉쳐 다른 길로 간다면 교토의정서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새 협정을 주도한 것도 의심을 사는 이유다. 미국은 2008~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7% 줄이기로 약속해 놓고는 경제성장이 저해돼서는 안 된다며 뒤늦게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에너지 다소비 국가인 호주 역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어 미국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인도는 인구가 많다 보니 1인당 배출량은 적지만 국가 전체 배출량은 엄청나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배출량 세계 9위인 한국은 1인당 배출량에서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중국.인도는 개도국임을 내세우지만 2013년 이후에는 교토의정서에 의한 감축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일본은 97년 자국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강한 애착을 느껴왔지만 이번 협정에 참여했다. 6% 감축 목표치 달성이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여섯 나라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새 협정이 한국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면서도 개도국 대우를 요구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피한 탓에 눈총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또 이번 일로 국제 사회에서 '박쥐' 이미지가 굳어져 '왕따'를 당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직한 방법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카드'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부터는 기술을 확보하고, 온실가스 감축 협상에서는 이번 협정을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왕따'를 피하기 위해 우리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뛰따라야 한다.

국제 사회에서는 2013년 이후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최근 협상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등이 2013년까지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줄여나가는 것이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조기 감축이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온난화 피해에는 국경이 없지만 온실가스 감축에는 국경이 뚜렷한 게 현실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