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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 때 비서실장 … "능력 있어 당선 땐 쓸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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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윤회씨를 중심으로 한 ‘비선(秘線) 라인’ 의혹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30일 세종로에서 본 청와대 모습. [김성룡 기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건 처음부터 알았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돕겠다고 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입법 보좌관과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지만 (2004년) 당 대표에 취임하면서 그만뒀다. ‘강남팀’을 운영한다는데 강남팀이란 건 없다. 능력이 있는 분이기에 나중에 당선되면 쓸 수 있다고 본다.”

 2007년 7월 1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청문회. 후보이던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59)씨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선에서 떨어졌다. 5년 뒤인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정씨를 쓰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박 대통령이 쓴 누구보다 힘이 센 ‘비선 실세’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선에서 떨어진 뒤 사석에서 정씨가 ‘역차별’ 받는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나를 도와주셨고 능력도 갖췄는데 나 때문에 오히려 물러났다”면서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측근인 청와대 비서관 3명이 정씨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3명은 정씨를 ‘실장님’이라 불러 왔다. 정씨는 98년부터 보좌관이 아닌 ‘비서실장’ 명함을 갖고 다녔다. 2002년 박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세 비서관들에겐 정씨가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인 셈이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한 2004년 이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정씨가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소문은 가시지 않았다. 당시 보좌진이 가끔 ‘강남 사무실’ 얘기를 했는데 이 때문에 정씨가 여전히 박 대통령을 돕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게 이른바 ‘강남팀’이다.

그러나 2007년 경선 당시 박 대통령에게 최 목사와 관련한 공세가 집중되자 그는 완전히 ‘야인’으로 돌아갔다. 일부 당 관계자들은 “2008년 총선 때 박 대통령 지역구에서 봤다”거나 "2012년 대선 직전 지지자 모임에서 마주쳤다”는 얘기를 전하곤 있지만 공식 직함을 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던 정씨가 박 대통령 취임 후 몇몇 인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배후로 떠올랐다. 지난 6월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때가 대표적이다. 정씨가 문 전 후보자와 같은 서울고 출신이어서 박 대통령에게 추천했다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정씨는 서울고 출신이 아니라 서울고 인근에 있던 보인상고를 졸업했 다. 고교 졸업 후엔 항공사 보안승무원으로 10여 년간 일했다. 기내 안전유지 담당자로 무술 유단자들이 주로 뽑히는 자리였다. 정씨는 중학교 때는 역도를 했다고 한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부 인사의 배후로 정씨가 지목된 가장 큰 원인은 박 대통령의 비밀주의적 인사 패턴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워낙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인사의 배경을 알고 싶은 인사들이 결국 종착지로 삼은 게 정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선 때 도운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자리를 얻은 이가 적다 보니 나온 얘기일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성격상 정씨 말에만 의존한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했다.

 정씨가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건 95년 최 목사의 5녀인 최순실(58)씨와 결혼하면서다. 최씨는 어려서부터 박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정씨가 지난 5월 최씨와 합의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각종 의혹이 일었다. 딸이 아시안게임 승마 대표 선수로 선발된 점도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지난 8월엔 박 대통령 지지자들과 독도에서 열린 음악회에 같이 갔다가 입방아에 올랐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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