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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벌의 추석빔 여러해 두고 입고서도 행복했었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추석빔은 분홍치마 저고리다. 어머니 장롱속에 오랫동안 간직되어 왔던 그 고운 연분홍 비단으로 지어주신 추석빔은 추석 보름쯤 전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 천이 장롱속에 있을 때부터 보아왔고 눈부시고 황홀한 그 비단을 자로재어 마름질하고 드디어 한벌의 옷이 될 때까지를 모두 지켜 보았었다. 어머니는 내옷을 속성으로 후딱 짓지를 않으시고 정성들여 천천히 지으셨기 때문에 나는 그 앞섶이나 소매 도련, 깃의 둥근곡선이 마술처럼 오묘히 꺾이는 것에 마냥 감탄을 금치 못하곤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추석빔을 입혀 놓으시고 어머니는 앞뒤로 나를 돌려가며 살피고 대견해 하셨다. 그러나 나의 추석빔은 항상 몸에 꼭맞는 것이 아니라 내년이나 후년을 위하여 치맛단도 넓게 접혀 넣어졌고 소매도 길게 하여 질러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해가 거듭하여 키가 크고 몸이 느는데 따라 치맛단도 따내리고 품이나 소매도 늘려 입게 되어 있었다. 이런 옷을 추석 보름전이나 열흘전쯤 만들어 놓으면 그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거기다 새 꽃신까지 마련되면 이 모두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맡에 놓고 자곤 하였다.
고운 분홍빛 치마 저고리가 몇년 지나자 꽃자주빛으로 변하였다. 분홍빛이 낡아 보기싫게 되자 새로 자주빛 물감을 물였었기 때문이다. 다시 이것을 홍두깨에 올려 윤이나게 두드렸기 때문에 내 꽃자주빛 추석빔은 햇빚속에 으리으리 빛나는 무늬를 이루었다. 그런 번들거리는 낡은 추석빔을 입고도 나의 유년기는 동화속의 공주처럼 행복한 것이었다. 또 내유년기의 추석은 실로 화려한 축제의 날이었다.
올해도 또 추석을 맞이했다. 불황이라는 소리가 드높은 가운데서도 올 추석은 풍성하고 흥성스러운 기운이 돈다고 한다. 아마 오곡백과가 풍작을 이룬 탓인지 어떻든 다행스럽고도 반가운일이다. 시장이나 백화점의 매상고도 상당히 높고 특별히 어린이 옷이나 식품류가 많이 매매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과연 풍성한 오늘의 추석이 가난하였으나 알뜰하였던 옛날 추석절의 감격에 미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오늘 우리는 추석이 아니라도 좋은 새옷·새신을 입고 신을 수 있으며 명절에나 먹던 특별요리도 쉽게먹을 수 있기 때문에 추석이 그렇게 기다려질것도, 감격스러울 것도 없는성 싶다.
그렇다고 옛날의 가난을 동경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추석을 보다 의의롭고 뜻깊은 명절로 만들 수 있을까를 다같이 생각해 봄직하다는 것이다.
좀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추석빔과 더불어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중·고생들의 교복자율화문제를 생각해 보게된다.
시범으로 실시중인 학교에서 너무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차림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제복의 규제를 벗어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드물고 또 다소 사치한데도 괜찮을 수 있지만 다만 그것이 우리들의 처지나 경제사정, 분수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옷 때문에 주눅이 든 학생들을 앞에 ,두고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여린 감수성을 크게 상처낼 우려조차 있는 것이다.
요는 어린이보다 어른,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소박하고 알뜰한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할 줄 안다.
옛날 나는 한벌의 추석빔을 여러해에 걸쳐 입고서도 행복하였는데 요즈음 소녀들은 그 몇배 아름다운 옷들을 평상복으로 입고서도 기쁨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불만에 차있다면, 이는 『시대가 달라졌으니까』라는 말로만 합리화 시킬수 없는 잘못이 우리들의 의식구조및 생활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허영자

<약력>▲38년경남태생▲숙명여대·대학원졸업▲62년 「현대문학」지 통해 데뷔▲현 성신여대교수▲시집「가슴엔듯 눈엔둣」 「친전」 「어여쁨이야 어찌 꽃 뿐이랴」, 수필집「한송이 꽃도 당신 뜻으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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