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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 소장의 생활 속 발명 이야기 <4> 막걸리와 맥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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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민재

우리나라 전통 발효주, 막걸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러 문헌을 통해 삼국시대 이전에도 술을 마셨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후한서』 ‘동이전’에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부여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영고’라는 행사를 치르는데 이때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는 내용이 나온다. 같은 시기 마한에서는 5월에 씨앗을 뿌린 후와 10월 추수가 끝난 후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도 ‘동맹’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주인 막걸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려 때에는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 만든다고 하여 이화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규보·이곡이 쓴 저서에도 막걸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으로 빚어 그대로 막 걸러내 만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을 따서 한자로 ‘莫乞里’로 쓰기도 한다. 탁하다고 해서 탁주, 농사철에 빼놓을 수 없다고 농주, 집집마다 담근다고 가주, 곡식으로 빚으니 곡주, 빛깔이 희어 백주 등 오랜 인기만큼이나 이름도 많다.

가정에서는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을 오지 그릇 위에 #자 모양의 ‘겅그레’를 걸고, 체로 걸러 뿌옇고 텁텁하게 만들었다. 거르지 않고 용수를 박아 맑은 술만 떠낸 것이 청주다. 거르는 과정에서 쌀알이 부서져 대체로 쌀뜨물 같은 흰빛을 띈다. 그렇지만 집집마다 특유의 비법이 있어 난백, 유백, 황백, 회백 등 단순한 흰빛만은 아니었다. 이 비법은 가문의 자랑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 맥이 끊기고, 요즘은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사대용 또는 갈증해소로 농부들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 바쁜 농사철 일종의 간식인 새참을 들며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피로를 풀어주는 활력소였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기도 하다. 나라 술이라 국주라고 불릴 만큼 많이 마셨던 막걸리의 1980년 연간 출고량은 맥주와 소주의 3배 정도였다. 이후 맥주와 소주에 밀리면서 계속 감소해 2005년에는 맥주의 10분의 1, 소주의 5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다 식이섬유와 단백질, 미네랄이 함유된 영양의 보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웰빙·한류 열풍을 타고 막걸리 붐이 일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09년 10대 히트상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맥주,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 가장 오래된 발효주로 알려져 있는 맥주는 여러 발명의 결정체다. 이산화탄소가 함유돼 일어나는 거품 또한 발명이다.

맥주는 기원전 4000년경 중동지역(지금의 이라크 인근)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 민족이 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만든 맥주는 보리를 건조하여 분쇄한 뒤 구워서 빵을 만들고, 그 빵을 부셔 물과 함께 자연 발효시키는 방법이었다.

그 후 보리가 이집트로 건너가며 이집트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 맥주가 나왔다. 그들은 보리나 소맥이 발아된 것을 건조시켜 절구통에 넣고 빻아서 빵을 빚어 구웠다. 이 빵을 다시 빻아 단지에 넣고 물을 붓고 열을 가해 죽처럼 걸쭉해지면 잘 식힌 후 체로 쳐서 건더기를 제거한 다음 남은 액체를 자연 발효시켰다. 발효가 끝난 후 찌꺼기를 걸러 그대로 마시기도 하고, 병에 넣어 밀봉한 다음 그늘에서 숙성시켜 마시기도 했다. 이집트의 맥주는 이후 유럽으로 전해진다

‘독일=맥주’ 이미지는 15세기경 독일 바바리아 지방에서 탄생한 라거 맥주에서 비롯한다. 바이에른공국의 초대 왕 빌헬름 4세는 1516년 맥주의 원료로 보리와 호프, 물만 사용하도록 한 ‘독일맥주순수령’을 공포했다. 오늘날 독일식 양조법이 전 세계 맥주 양조법의 모델로 간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의 전성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열렸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맥주 제조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물의 이송에서부터 맥아의 분쇄, 맥즙의 교반 등에 동력이 이용됨으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특히 19세기에는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열처리 살균법을 발명함으로써 장기간 보관까지 가능하게 됐다. 또, 덴마크의 한센은 효모의 순수배양법을 발명하여 맥주의 질을 한 차원 더 높였고, 칼 폰린네는 암모니아 냉동기를 발명하여 사계절 내내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맥주의 질은 또 다시 한 단계 향상할 수 있었다. 맥주 고유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 장기 유통을 할 수 있는 첨단비열처리공법도 개발됐다.

우리나라 사람이 설립한 최초의 맥주회사는 1951년에 문을 연 조선맥주(하이트맥주)와 동양맥주(OB맥주)였다.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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