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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변호인 공방6시간|정재파군항소심 첫공판…밤10시까지 마라톤심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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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피고인 정재파군 (22·인하대행정과3년)에 대한 항소심 첫공판이 23일하오4시부터 서울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이한구부장판사·주심 심일동판사·배석 신성철판사)심리로 열려 이날 하오10시까지 6시간의 마라톤 심리로 사실심리를 끝마쳤다.
정피고인은 1심때와 같이 범행사실을 시종 부인했으며 박양 살해사실을 자백한 자술서는 『검사가 불러주거나 지시하는대로 쓴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필 작성한 것은 사실이나 신문·방송을 통해 익힌 사건내용과 조사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들은 사건개요를 꾸며서 써준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날 공판의 압권은 검찰과 변호인단의 한치의 양보없는 공방전.
최근 주요강력사건의 잇단 무죄판결에 쇼크를 받은 검찰은 이사건이 경찰 아닌 검찰의 직접수사 사건이었던만큼 2심에서의 「무죄번복」을 노리고있고 변호인측은「1심무죄」를 그대로 유지키위해 사력을 다해 개정벽두부터 법정은 싸늘한 초긴장 분위기가 감돌았다.
○…『재파! 오랜만에 다시 만났군. 기분이 어떤가. 상은이는 자네가 죽인게 사실이지?』 검찰직접신문 첫머리에 조병길검사가 피고인에게 건넨 인사말부터 가시가 돋쳐있었다. 정피고인은 이말을 받아 『죽인사실 없읍니다』며 똑바로 조검사를 응시.
○…개정 10분만에 검찰·변호인간의 첫설전이 붙었다. 정피고인이 「박양을 살해했다」 고 자백한 진술서를 중심으로 조검사가 하나하나 과정을 따져나가자 변호인측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2심의 심리구조가 속심(속심)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검찰측은 지금 1심때 이미 완료된 사실문제를 중복신문하고있다』고 항의.
이에대해 강원일부장검사는 즉시 일어서서 『항의는 재판장의 허락을 받아 해주기바란다』며 『변호인의 발언은 검찰의 직접신문에 중대한 차질을 준다』고 맞받았다.
○…「설사 허위자백이라 하더라도 범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대답할 수없는 자백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강원일부장검사가 자백의 증명력을 입증하기위해 차근차근 따지기 시작하자 정피고인은 한때 답변을 못한 상태에서 변호인단은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변호인들은 『이미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한 것도 있는데 피고인이 미처 생각도 해내기전에 다그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신문방법』이라고 대들고『모르면 모른다, 기억안난다, 답변 못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하라고 피고인에게 지시.
그러자 검찰측은 즉시『피고인의 답변방향까지 지시하는것은 실체 진실을 연출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항의, 재판장은『답변방향까지 변호인이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고 주의.
○…이어 반대신문에 나선 윤태방변호사가 1백항(항)이 넘는 질문을 하자 강부장검사는 『검사가 질문할때는 제지를 요구했는데 지금 변호인 신문내용도 중복질문』이라고 시비.
또 『검사가 몰아붙이고 폭행하고하니 검사비위에 맞추어 대답해 주었지요? 그렇죠?』 라는 식으로 신문을 해나가자 또다시 검찰측은 『신문아닌 변론을 하고있다』고 제동을 걸었고 재판장은『변론때 할것은 빼놓으라』고 주의.
계속해서 『그렇게 된것이지요? 그렇게 했지요?』라는 「신문꼬리」가 붙자 강부장검사는 『재판장님, 피고인에게 신문을 하는것이 아니라 해석을 해주고 있습니다. 했지요, 그렇게 된것이지요라고 묻지말고 어떻게 된것이지요라고 묻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요구, 재판장도 『이점 유의하시오』라고 변호인에게 일렀다.
○…1심때완 달리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자신감때문인지 정피고인의 답변태도도 당당.
정피고인은 조검사가『자술서대로 범행을 시인한뒤 눈물을 글썽이었지?』라고 묻자 『내가 언제 눈물을 글썽였느냐, 담담히 있었을 뿐이지. 검사님이 잘못보았다』고 대답했고『털어놓고나서 시원하다고 하지않았느냐』고 되묻자『거짓말좀 그만하십시오』라고 응수.
또 『숙모와 대질때 숙모가 눈을 껌벅이며 「너미쳤니」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소설을 쓰는것이냐』고 비웃기도.
○…푸른수의에 미결수번호 3번을 단 정피고인은 무척 수척한 얼굴이었으며 강부장검사가 『재파! 어디 몸이 불편한지 얼굴이 몹시 안됐다. 우리한테 조사받을땐 안그랬는데…』라며 역시 위로를 넣은 꼬집음을 던지자 『감기가 심한데다 피붓병이 곁들여 고생하고있다』고 대답.
○…하오8시10분쯤 열기띤 공방이 한창일때 도둑고양이 한마리가 법정안에 소리없이 기어들어와 법정리들이 고양이사냥을 하느라 한때 재판이 중단되었다.
고양이는 방청석밑에서부터 기자석·변호인석을 거쳐 증언대위에 올라가 한참동안 방청 (?) 하다가 재판장석 아래를 어슬렁거렸고 가끔 「야옹야옹」 울기까지해 법정에 모처럼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다음공판은 특별기일을 잡아 10월11일상오10시에 열린다.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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