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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 기자의 맛따라기] 전복삼계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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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달고 날로 먹거나 익혀 먹어도 좋다. 말려서 포로 만들어 먹으면 더 좋다.'

정약전은 '자산어보(1814년)'에서 민어와 복(鰒)에 대해 비슷한 설명을 했다. 식품 보관이 어렵던 시절의 고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복은 복어가 아니라 전복을 말한다. 왕실 진상품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말린 전복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통째로 말린 전복(全鰒), 두드려 펴 가면서 말린 추복(鰒), 사과 깎듯 얇고 길게 저며 말린 인복(引鰒)이 있고, 조복(條鰒)도 나오는데 꼬챙이에 꿰어 말린 전복을 일컫는 듯하다.

조개의 귀족 전복은 예부터 귀물이어서 왕실 진상품의 중요 물목이었다. 말린 전복은 제주도에서 올렸고, 생전복은 충청도에서 정월과 8월에 300개씩 진상했다고 한다. 전복은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서 난다. 참전복, 까막전복, 말전복, 시볼트전복, 오분자기가 대표 종이다. 참전복은 동.서.남해 연안에 모두 자라지만 다른 전복들은 바다 밑 겨울 수온이 섭씨 12도가 넘는 제주 바다에 서식한다.

궁중 잔치 음식 가운데 전복탕이 있었다. 전복을 저며 끓인 맑은 국이다. 묵은 닭, 잣, 미나리 등이 함께 쓰였다고 한다. 추복탕이라고도 했으니 두드려 펴서 말린 전복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날 것을 저며 기름 소금 찍어 먹어도 맛있는 전복인데,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전복탕보다 더 호사스러운 음식이 제주에 있다. 제주에서 음력 6월 20일은 '닭 잡아먹는 날'이다. 초봄에 부화해 넉 달쯤 자란 중닭으로 이날 '닭제골'이라는 계절음식을 해먹었다. 중복 무렵이니 제주도식 복달임인 셈이다.

손질한 닭 속에 참기름을 바르고 마늘을 채운 다음 참기름을 더 넣는다. 뚝배기 위에 꼬챙이 7~8개를 걸치고 준비한 닭을 올려 무쇠솥에서 중탕한다. 뚝배기에 고이는 진국은 제주에서 최고로 꼽는 여름 보양식이다.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오골계를 쓰고 전복을 넣는다. 왕실의 전복탕이 부럽지 않다. 진국이 빠진 살코기는 푸석푸석하고 맛이 없다. 부잣집에서는 진국만 먹고 살코기는 버렸다.

서울 서교동의 제주향토음식점 '눈치없는 유비'에서는 닭제골을 응용한 전복삼계탕(인삼은 안 들어가니 실은 복계탕)을 내고 있다. 주인은 15대 제주 사람. 제주에서처럼 삼계탕용 닭(생육기간 40일 내외)보다 훨씬 큰 중닭을 쓴다. 어린 닭에 비해 국물 맛이 깊고 살은 더 졸깃하며 고기도 많아 한 마리면 3명이 먹을 수 있다. 전복은 아기 주먹만 한 것으로 3~4개를 껍질째 넣는다. 거기에 불린 쌀, 참기름, 마늘 몇 알과 대파 두어 대가 통으로 들어간다. 죽처럼 끓여 나오는 전복삼계탕의 맛은 고소하고 향긋하다. 전복 살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즐거움. 요리시간이 길기 때문에 적어도 2시간 전에 예약해야 한다. 업소 분위기가 식당보다 술집에 가깝다는 점도 감안하시길. 이틀 뒤면 말복, 무더위가 저만치서 떠날 채비를 하겠다.

이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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