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를 주는 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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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일보는 22일로써 창간 17주년을 맞았다.
그 연륜은 길고 긴 세월은 아니지만 또 짧지만도 않은 시간의 흐름이다. 사람으로 치면 바로 성년을 앞둔 약동의 연륜이다.
중앙일보는 그 연륜에 걸맞은 성장을 이룩하며 오늘을 맞고있다.
벌써 4년전에 국내 신문사상 최초의 1백만부 발행을 기록한데 이어 중앙일보는 지금 제2의 도약을 맞고 있다.
물론 양적 팽창만이 중요하진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양적 팽창은 곧 독자의 성원도를 보여준 것이며. 또 신문의 책임과 사명을 그만큼 높여주는 것이기에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최단시간에 이룩한 신문기업의 성공이란 기록도 된다.
우리는 물론 이같은 남다른 성장의 기록에 대해 지나친 자만을 갖지는 않는다.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그 기록은 더욱 새롭게 갱신될 수 있으며 미래의 발전으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중앙일보의 성장은 기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신문의 본래적 사명에 보다 더 충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점에서 이제 우리는 창간년대의 시대적 의미와 그때 공약했던 창간정신을 반추(반추)하게 된다.
광복20년을 경과한 그 시대는 격동과 혼란의 연대였다. 군사혁명의 회오리는 비록 식었다곤하나 아직 불안의 싹이 잔존해 있었고 그럼에도 경제개발을 통한 국가발전의 국민적 기대도 팽배하던 시대였다.
그 시점은 또 일제식민시대에 고갈되고 쇠미했던 민족정신이 다시 고양되기 시작한 시절이었고 새 시대 새 역사의 진운에 대한 의욕도 부풀고 있었다.
그런 시대정신에 호응하여 중앙일보는 창간과 더불어 「사회정의」와 「사회복지」를 실현할「사회공기」의 성취를 자기했다.
혼란과 빈곤, 분열과 추종의 어두운 현실만을 이야기하는 대신 민족역사의 요청이기도한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밝은 의지를 창간정신가운데 부각했던 것이다.
공정을 좀먹는 일체의 부정과 불의를 광정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모든 사회성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도덕적 기풍을 환기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경제후생의 증대가 곧 사회복지의 근거이며 문화양달의 터전임을 인식하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활활동의 횃불이 되려는 희망도 폈다.
사회발전과 국민생활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신문은 바로 이성과 관용을 겸비한 책임언론이어야 하며 그 점에서 민족의 목탁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언론인의 자학과 품위제고도 다짐했다.
그런 다짐속에 중앙일보는 어언 17년의 연륜을 쌓으며 국민과 함께 성장해왔다.
「국민의 신문」, 「국민을 위한 신문」을 표방했던 창간정신은 지금도 물론 지켜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앞장서겠다던 그때의 의욕도 역시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물론「긍지를 심어주는 신문」의 사명을 우리는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중앙일보는 격변하는 시대상황속에서 우리의 양식과 지혜와 용기를 가다듬어 성실히 대처하려 노력했으며 그런 가운데서 간단없는 자괴와 반성의 계기를 맞기도 했다.
우리가 오늘의 시대적 진운속에서 새로운 책임과 사명을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발전은 우리의 국민적 염원이며 국가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우리는 경제발전에 상응한 국제적 경제지식의 보급과 과학기술정보의 공급에 특히 심혈을 경주했다.
그와함께 도시화와 산업화의 추세속에 있는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에 맞서 「인간성」을 유지하고 인간적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기풍의 진작을 위해서 그 어느때보다도 힘을 기울이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현실은 금권만능의 가치관과 감각적 쾌락에 치우치는 풍조에 휩쓸려 사회성원들 사이엔 불화와 이반의 감정도 점고했다.
친선을 밖으로 돌려보아도 마찬가지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각한 경제불황속에서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있다.
나라사이의 관계도 신의나 우의보다는 경제적 이해가 관건이며, 그럴수록 국력의 비중을 매일같이 실감하며 살아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도 결국은 국가적 우월감의 병적 과시욕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그 누구도 감히 그런 발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런 일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우리는 흔히 수난과 시련의 역사만을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가까이 지난 백년을 거슬러 생각해도 그것은 분명 영광보다는 고난의 역사였다.
그러나 누천년 역사의 지평위에서 우리민족이 면면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시련보다는 영광이 더 많았다. 7세기무렵 중국은 백수10만의 대군을 동원해 우리나라를 침공했었다. 을지문덕은 하루에 칠전칠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전술에 지고 전략에 이긴 것이 우리민족의 슬기요 저력이었다. 적장에게 시까지 적어보낸 여유를 잃지 않았던 을지문덕은 전략상 후퇴끝에 총공격을 시도, 백만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우리는 지난 2천년의 역사를 통해 그 전반의 천년은 고구려·발해 등 민족국가체제의 완성을 본 시기였으며, 후반의 천년은 고려·조선의 연륜으로 이어지는 역사였다.
우리의 선상들은 10세기 이상이나 만주대륙에까지 그 국세를 뻗쳐 나라를 건설하고 민족의 역사를 형성했었다. 우리 역사속에 좌절과 고난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 부분을 조명한 것에 불과하다.
바로 오늘 우리 역사를 모독하려는 일본과의 관계만 보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역사의 상고사를 보면 분명 일본은 우리문화의 수입국이었고, 우리는 독창적인 문화풍토를 이룬 문화민족이었다.
학문적으로도 우리는 선진국이었다. 가령 송나라 찬령이 저술한 『송고승전』을 보면 입당유학했던 신라승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원측, 의상, 둔륜, 도증, 신방, 대현 등. 그시대 일본의 승려들도 당나라에 유학했었지만, 중국의 고승전엔 그 이름이 비치지 않는다.
원만대사는 당에 유학하려다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의 깊은 학문은, 사해에 명성을 떨쳤다.
지금 우리는 감미로운 회고 취향에 젖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특히 이 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전통과 우리 고유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함으로써 민족적 자각과 단결의 구심점을 찾아야겠다. 반만년 역사를 통해 한민족은 간단없는 외세의 침탈을 받으며 수난극복의 민족적 역량을 과시해 왔다. 그 가운데서 외래문화의 수용과 전달이란 수동적 입장만이 아니라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창조적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자긍이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에 대한 민족적 자각을 고취하고 새 역사를 개척하는 활력과 원기를 북돋는 일에도 스스로 할바를 찾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또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올바르게 판별·극복하는 능력,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자세를 중시하고자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역사를 거울로 하여 미래를 동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실한 생활의식이다.
민주국가의 건실, 정의사회의 실현, 복지사회의 성취는 우리 모두에게 부과된 당연한 과제이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건실한 생활의식과 불굴의 실천 윤리의 산물이 분명하다.
우리사회 모든 성원이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모으며 이기를 극복할 전력투신의 의지와 용기가 있을 때 우리의 미래는 밝아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도, 역사의 대도, 민족의 대경을 위해 사회의 목탁이 되기를 다시 자기한다.
창간 17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창간정신에 되돌아가 민족과 역사와 세계라는 시야에 충실하기를 다짐하며 독자제지의 변함없는 지원과 사랑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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