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공공요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내년도 예산안을 긴축형으로 편성하면서 정부는 그 전제인 재정지표를 선정해 놓았다.
명목성장률은 18·5%, 조세부담률은 16·6%(82년18·6%)로 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물가상승률은 5%선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정규모의 팽창을 막기위해 조세부담률의 상승을 둔화시켰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경기회복능력을 북돋는다는데 뜻을 둔 것이다.
그것도 인플례이션을 극력 억제하면서 경기회복을 실현한다는 정책방향을 표명하고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세는 아니지만, 사실상 국민의 부담증가를 가져오는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이 내정되고 있어 의아한 감을 주고있다.
각급 학교 수업료를 비롯하여 우편요금, 철도료, 고속도로통행료 등을 10%이상씩 내년부터 올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인상해야할 명분도 밝히고 있다. 공공요금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지만, 시설확장을 위한 소요자금은 실수요자부담으로 해야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우선 지적해야할 것은 실수요자 부담원칙이란 논리의 허구성이다.
가격인상때마다 물고 나오는 실수요자부담이라는 용어는 이제 설득력이없다.
그 회상을 벗겨보기로 한다.
어떤 품목, 어떤 가격이든 거기엔 실수요자와 비수요자가 있게 마련이다. 태양이나 대기이외에는 모든 사람이 실수요자가 되는 품목이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가격인상이든 그 부담증가는 그 상품을 사는 실수요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므로 값을 올려도 된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품목의 가격인상이라고 해도 그 영향은 전체 물가체계에 미치며 결국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에는 각자가 욕구를 자제해야하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결국 그 열매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가기에 값진 것이다.
금년에 물가가 5∼6%선에서 안정될 것이 확실해서 예산증가율도 10%이내로 누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임금·농산물가격 인상을 억제한 결과가 서서히 실질소득의 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안겨주고 있다.
그런중에 유독 일부 공공요금이 앞장서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실수요자부담이라고 하지만 공공요금에는 결코 적용해서는 안되는 발상이다. 국민생활과 더없이 광범위하게 연관되는 부문인 까닭에 공영화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우편·도로사업이 특정인만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굳이 공영화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물가안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공공요금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5% 물가상승전망을 강화하는 공공요금인상계획은 반드시 재고해야한다.
우선 인상계획이 있다는 각 품목에 대해서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수업료는 그 하나다. 교육시설, 교육환경의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올해부터 교육세롤 신설, 징수하고 있다.
정부는 교육세수만으로는 교육투자를 충당하기가 어려워 수업료 인상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교육환경의 악화는 어제오늘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것이다.
따라서 교육세의 징수추이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지, 일거에 전부를 타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금은 세금대로 거두고 수업료는 수업료대로 올린다는 구상은 설득력이 없다.
고속도로 통행료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당초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건설비만 회수되면 무료로 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후 워낙 보수비가 많이 들므로 통행료의 징수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취지가 어느덧 다른 고속도로의 확장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요금을 올린다는 것으로 변질되고있다.
정부예산으로 해야할 사회기반확충사업이 이른바 실수요자부담으로 바뀐 것이다.
다른 항목도 비슷한 경우다.
경영합리화를 주목적으로 공사화를 했음에도 우편망 확충을 요금인상으로 하려한다.
부족한 정부예산으로 경제의 애로부문을 모두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럼에도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공공요금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가격인상을 선도하여 물가전반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물가안정이 공공부문의 실질적인 투자여력을 길러준다는 것은 사기업이나 가계의 경우가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