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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루마니아작가 목숨 건져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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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테랑의 스파이작전
『「폴·고마」 와 「비르길·타나세」를 살해하라.』
지난2월 프랑스의 한 핵발전소애 침투, 산업정보 수집활동을 벌이고 있는 루마니아 첩보원「미스터Z」 에게 밀명이 떨어졌다.
프랑스로 망명한 반체제작가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미스터Z」는 살인지령에 혐오감을 느껴 고민하다가 결국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프랑스 정보기관인 국토보안국(DST) 에 자수했다.
「미스터Z」 의 신분과 루마니아 정보기관의 밀명을 알아낸 DST는 곧 역공작을 펼친다. 「미스터Z」가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처럼 하고 루마니아에 살고있는 그의 어머니와 동생을 프랑스로 데려온 뒤 이 음모를 공개한다는 시나리오였다.
「미스터Z」의본명은 「마티·하이토크」. 원자력발전소의 배수설비회사에 기사로 근무하면서 프랑스의 과학기술정보를 본국으로 빼돌리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의 처와 자녀들은 이미 프랑스에서 동거중이었다.
「미스터Z」 와 DST의 치밀한 역공작은 마지막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차질을 빚어 어머니의 탈출에 실패했어도 대체로 계획대로 실행됐다.
지난 5월20일 파리의 바스티유광장 부근에서 자택을 나서던 루마니아 출신 망명작가「비르질·타나세」 (37) 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타나세」 는 루마니아에서 반정부활동을 벌이다 77년 추방돼 파리에 정착, 7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파리에서 반체제활동을 계속해 그의 실종사건은 즉각 프랑스의 전매스컴에 크게 보도되었고 프랑스의 경찰과 매스컴은 루마니아 비밀정보기관에 의한 납치사건으로 추정했다.
더구나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해주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
지난 6월9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기자회견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루마니아정부를 비난했다.
『「타나세」 씨가 루마니아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는데…』 라는 한기자의 질문에 「미테랑」대통령은 『그것은 비극적인 가정이지만 만약 「타나세」씨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면 양국간의 외교관계는 심각한 사태를 맞을 것』 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회견에 참석했뎐 기자들은『「타나세」 씨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라는 말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타나세」가 틀림없이 루마니아 정보기관에 의해 피납, 이미 살해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튿날에는 1백여 시민들이 루마니아대사관 앞에서 「타나세」의 실종을 항의하는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7월20일로 예정됐던 「미테랑」대통령의 루마니아 방문계획이 「시간관계상」 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연기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루마니아측은 파리주재대사관을 통해 『우리나라와 「타나세」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프랑스정부의 조치는 유감』 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에 망명중인 루마니아 반체제작가의 납치극은 이렇게 꾸며졌다. 5월초「미스터Z」는 프랑스의 DST지령대로 한 파티장에서 반체제각가 「폴·고마」 씨 (46) 에게 접근, 포도주잔에 약물을 집어넣었다.
이약은 심장발작을 유발하는 것으로 2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완전히 소멸돼 검출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 잔을 한 손님이 넘어뜨려 버렸다. 실은 이 손님도 DST의 수사요원. 「미스터Z」의 행동을 감시하는 루마니아 요원을 속이기위한 시나리오였다.
다음은 「타나세」씨. 「미스터Z」의 청부를 받은 암살실행 역에는 프랑스의 정보요원이 위장, 「타나세」씨를 납치해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의 조그마한 마을에 숨겼다. 그리고 납치사건이 크게 보도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프랑스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미테랑」 대통령 역시 「항의 기자회견」을 통해 한몫을 거든 셈이다.
루마니아 정부는 「고마」암살은 실패했지만 「타나세」 살해는 성공한 것으로 완전히 믿고 있었다. 지난 8월23일 보국차 귀국한 「미스터Z」에게 루마니아의 최고영예훈장까지 수여했다. 그러나 지난 8월30일 프랑스 사회당계 르마탱지가 『「타나세」는 프랑스 정보기관의 보호아래 살아있다』는 특종기사를 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르마탱지의 보도로 「미스터Z」 「타나세」 「고마」 등 3주역은 31일 악튀엘지 사무실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사실을 밝히지 않을수 없었다.
르마탱지의 특종보도로 인해 출국직전의 「타나세」 모친이 부쿠레슈티에 발이 묶여버렸지만 동생은 파리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당황하게 된것은 루마니아정부. 비밀경찰 활동의 한부분이 폭로된데다 국제사회를 무대로악역을 벌인다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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