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부시에게 이렇게 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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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정에 밝은 미국 굴지의 한반도 전문가 셀릭 해리슨이 주말에 이런 글을 e-메일로 보내왔다.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아버지 부시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핵위기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건의해 왔어요. 아들인 대통령 부시는 북한에 갈 것 같지 않아서요." 그리고 해리슨은 북한이 부시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초청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 아버지 부시 평양행 가능한가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한 지 오래지만 해리슨 역시 북한이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북.미 불가침조약 대신 서면 (書面=in writing)으로 된 체제안전의 보장을 받아들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북한의 핵포기를 연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눈싸움에서 눈을 먼저 깜박이는 사람이 진다. 지금 일종의 눈싸움을 하고 있는 북한과 미국은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상대방에 먼저 눈을 깜박이라고 요구한다.

미국은 북한더러 먼저 핵포기를 선언하라고 하고, 북한은 미국에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선언하라고 하고 있으니 핵문제는 한국과 주변국가들의 불안.초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라크전쟁의 과정과 결과가 북한 지도자들에게 겁을 주는 '이라크 효과'라는 것이 작용해 베이징에서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이 열린 것만 해도 다행이다.

중국이 북한을 어르고 달랜 결과이기는 하지만 베이징 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10월 이래 반년 만에 처음 갖는 고위급 회담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한국과 미국 못지않게 경계하는 중국은 베이징 회담 실현을 위해 한때는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까지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다. 베이징 회담에 한국이 빠진 것을 두고 정부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언론과 야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그것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의 자업자득이다.

盧대통령은 줄곧 핵문제는 한국의 주도로 해결할 것이라고 장담해 왔다. 그의 주장을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한국이 언젠가는 베이징 회담에 참석한다는 간접화법이다. 국민은 그런 줄 알았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아예 직접화법으로 한국이 어느 단계에 가면 북.미.중 3자회담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한국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자면 아무리 늦어도 마무리 단계에 한국의 회담 참석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주 갑자기 사정이 뒤집혔다.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은 베이징 회담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盧대통령은 MBC '100분 토론'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한국의 베이징 회담 참석이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저기 한국의 참석을 주장하고 다니는 윤영관 장관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핵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북한의 집념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회담 참석의 미련을 버리는 것이 낫다는 盧대통령의 결정은 현실적이다.

*** 韓·美가 6개국 非核협상 주도를

그러나 그는 그런 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지 않았고, 한국이 핵문제 해결을 주도한다는 픽션으로 국민을 오도(誤導)했다. 회담장 밖에서는 핵문제 해결에 영향은 미칠 수 있어도 해결을 주도할 수는 없다.

盧-부시 회담이 눈앞에 닥쳤다. 비생산적 시비는 접고 盧대통령이 부시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다시 친구의 말을 빌려야겠다. 해리슨은 이렇게 건의한다.

"盧대통령은 부시에게 두 가지를 설득해야 합니다. 첫째는 북한과 미국이 동시에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주변 4강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 배치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남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6개국 비핵화 협상을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자는 것입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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