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 … 뒷돈 받고 모뉴엘에 특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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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업체 모뉴엘의 6700억원대 금융사기 사건의 배경에 국책 금융기관인 한국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 임직원들과의 유착 및 특혜 지원이 있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25일 박홍석(52·구속) 모뉴엘 회장이 두 금융기관의 최고위급 임원과 여신담당 직원 등 10여 명에게 금품 로비를 벌인 단서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로비 관련 진술을 확보했으며 수사 대상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관세청과 금융감독원이 박 회장의 해외 유출자금 360억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모뉴엘 법정관리 신청 직전 미국으로 달아난 무역보험공사 정모(47) 영업총괄부장 및 전·현직 임직원에게 수천만~수억원씩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모뉴엘 재무이사 강모(42)씨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출입은행 부장급 간부 한 명을 불러 조사했다. 해당 간부는 “여신 업무와 관계없이 강씨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모뉴엘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금품 로비가 집중된 국책기관인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이었다. 무역보험공사는 9월 말 현재 모뉴엘이 허위로 위조한 수출채권에 대해 무역보험증권을 발행해 모두 4928억원을 신용보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담보로 시중은행 10곳이 3860억원을 대출해줘 피해를 봤다. 공사 측은 또 2010년 모뉴엘을 ‘트레이드챔프클럽(TCC)’, 2013년 ‘글로벌 사다리 기업’으로 선정했다. 신용보증한도는 2009년 8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억 달러로 늘어났다. 수출입은행도 2012년 7월 모뉴엘을 ‘히든 챔피언(수출우량기업)’으로 지정한 뒤 신용대출로 1135억원을 내줘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검찰은 특히 무역보험공사 A 전 사장 재직 시절 모뉴엘에 대한 보증한도가 늘어난데 주목하고 있다. 달아난 정 부장은 A 전 사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무역보험공사는 2012년 말부터 보도자료 등을 통해 “내수 기업이던 모뉴엘은 무역보험공사의 금융 지원을 받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에 대해 A 전 사장은 “중소기업 지원을 정책적으로 독려했을 뿐 특정 기업을 밀어주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한 적은 없다”며 “모뉴엘 보증한도 상향은 사장이 결재한 사안이 아니며 금품 로비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모뉴엘에 대한 지원이 수출 유망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정부 정책 차원에서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한 정·관계 로비 여부도 확인할 방침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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