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 이제는] 10. 특별하지 않은 특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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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나라의 가구 수는 대략 1250만 정도다. 5월 말 현재 보급된 승용차 수는 1080만 대. 트럭 등 상용차를 포함하면 1500만여 대로 늘어난다. 가구당 자동차를 거의 한 대 정도 갖고 있는 셈이니 자동차는 이미 생활필수품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승용차를 살 때는 원래 가격의 4~8%에 해당하는 특별소비세를 내야 한다.

승용차만이 아니다. 보석.귀금속.고급시계 등에도 14%의 특소세가 붙는다.

이런 특소세는 세수를 늘리고 특정 품목의 수입이나 소비를 억제하자는 취지로 1977년 도입됐다. 부유층이 주로 소비하는 품목에 세금을 물림으로써 소득 재분배 효과를 노린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도입한 지 28년이 지나면서 '특별하지 않은' 특별소비세는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세수 측면에서 특소세는 별 효력이 없는 세금이다. 지난해 특소세는 총 4조6000억원이 걷혔다. 애초 예상(5조9000억원)보다 1조3000억원이 덜 걷혔다. 이는 지난해 전체 국세 수입 실적인 117조8000억원의 3.9%에 불과하다. 97년 만해도 내국세의 6%가량을 특소세가 차지했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줄고 있다.

한때 세탁기.냉장고를 포함해 30개를 넘었던 특소세 과세 품목은 현재 승용차.보석.귀금속 등 14개로 줄었다. 지난해 10월에도 프로젝션 TV.PDP TV.골프용품 등에 붙던 특소세를 없앴다. 등유.중유 등 유류에 붙는 특소세와 경마장.카지노.유흥음식점 등의 입장료.음식값에 붙는 특소세만 그대로 남아 있다.

정부도 특소세가 더 이상 특별한 세금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과세 대상 품목을 줄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특소세로 과소비 억제와 소득 재분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소세가 붙는 제품이 특별히 사치성 소비품이 아닌데다 세수 실적도 미미해 부의 재분배 효과도 거의 없다. 오히려 경기가 침체됐을 때는 특소세로 인해 소비만 더 위축시키는 역효과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특별한 품목을 따로 정해 특소세를 매겨봤자 세수효과도 없고 오히려 소비자의 부담만 늘려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치성 향락업소에 붙는 특소세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신 유럽연합 국가처럼 특정 소비로 인해 사회의 비용을 증대시키는 품목인 유류.술.담배 등에 별도로 개별 소비세(Excise duty)를 부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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