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헤이글 국방장관 사임 발표…사실상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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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각의 유일한 야당 인사였던 척 헤이글 장관이 사임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헤이글 장관의 사임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엔 헤이글 장관과 조 바이든 부통령도 함께 했다. 백악관은 이번 결정이 "상호간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상의 해임에 가깝다고 뉴욕타임스(NYT)·CNN 등 외신은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지난해 1월 헤이글 장관을 지명했다. 헤이글 장관은 공화당에서 유일하게 오바마 대통령의 국방비 감축 주장에 동조한 바 있다. 이 인선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 인사 탕평책으로 꼽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헤이글 장관이 사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면서도 헤이글 장관의 사임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여운을 남겼다.

헤이글 장관의 급작스런 사임 배경을 두고 CNN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사실상 강제로 밀려난 것"이라며 "임기를 2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앞으로의 안보 정책 기조를 정하면서 변화를 원했으며, 지금까지 국방장관으로 임무를 잘 수행해왔으나 마지막 (야당) 인사였던 헤이글이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헤이글 장관 측근들은 최근 앞으로 남은 2년도 계속 장관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보도했다. 또 헤이글 장관의 사임이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이자 헤이글 장관의 비서실장이기도 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로 부임한 후 일어났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오바마 대통령과 헤이글 장관의 관계는 지난 9월 IS 격퇴 작전에서 지상군을 투입할지 여부를 두고 삐그덕거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설을 거듭 일축했으나 헤이글 장관과 국방부는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초에 국방부를 직접 찾아 "최고 통수권자로서 말하건대 미군이 지상전에서 싸우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 못박았다.

중간선거 참패 후 오바마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외교안보 정책을 일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공화당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민개혁을 대통령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으로 정면 돌파한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돌파구를 찾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리아 및 수니파 무장정파 이슬람국가(IS) 등의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6년 중간선거 참패 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 사흘 전까지도 "럼스펠드는 나와 임기를 같이 할 것"이라며 럼스펠드에 대한 언론의 사퇴 압박을 일축했으나 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에게 내준 후 마음을 바꿨다.

24일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헤이글 장관은 서로를 "존경하는 친구"라고 부르고 박수를 보내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줬다. 헤이글 장관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장관직을 계속 유지한다. 후임자로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 잭 리드 상원의원, 애슈턴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 등이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러노이 전 차관이 장관으로 임명될 경우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방장관이 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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