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섬, 서울 도심 보행영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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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명동이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 후 17년간 서울 도심의 보행공간은 극적으로 확장됐다. 2000년대 들어 청계천·서울광장·광화문광장이 잇따라 조성되면서 자동차 중심이었던 도심은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간 확장된 4대문 안 도심 보행공간은 9만1591㎡(2만7700평). 도심 보행영토의 확장은 지방자치시대가 막을 올린 이후 민선 시장들의 작품이다. 조순·고건·이명박·오세훈 전 시장과 박원순 시장은 자신이 속한 정치지형과 관계없이 보행공간 확대 정책을 펴왔다. 마이카(My car) 시대가 저물고 ‘걷는 도시(walkable urbanism)’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도심 보행공간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고 섬처럼 끊어지고 고립돼 있다는 사실이다. 광화문광장이 대표적 사례다. 횡(橫)으로 청계천과 이어지려면 찻길을 두 번 건너야 하고 종(縱)으로는 마땅한 동선을 찾을 수 없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와 서울역 고가 등을 보행로로 리모델링해 동선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월 “서울역 고가를 2016년 말까지 완공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대한 우려와 반발도 작지 않다. 박 시장의 발표 이후 “19대 대선(2017년) 전까지 ‘박원순의 청계천’을 만들려는 것”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남대문 상인들은 지난 주말에 이어 24일에도 서울역 고가 반대 집회를 열었다. 또 서울시가 보행공간을 확대하려 하자 교통난을 우려한 조계종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교통을 관장하는 경찰도 서울시 계획에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도심 보행공간을 확대해 온 선진국 대도시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단기적 계획으론 ‘보행 도시’를 이루긴 어렵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간 서울의 보행공간이 분절된 채 확대돼 온 것도 시장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성 사회간접자본(SOC)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도시연대 김은희 정책연구센터장은 “고가 철도를 재활용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리더십이 아닌 시민 참여로 시작됐고, 공사 기간도 10년이 넘는다”며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하이라인 파크 조성은 99년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이 발족한 뒤 2006년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시장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돈은 4400만 달러(약 490억원)에 이른다.

 쾌적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심 보행공간의 확보는 장기적 비전과 시민들의 참여, 그리고 사회적 합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특별취재팀 : 뉴욕 =강인식 팀장, 강기헌·구혜진 기자, 이은정(단국대) 인턴기자 kang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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