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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토부, 감정평가사 밥그릇 지켜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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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

24억원과 52억원. 감정평가사 두 명이 서울 한남대교 북단의 고급아파트 ‘한남더힐(284㎡)’의 가치를 평가한 금액이다.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고용한 평가사는 24억원을, 집을 팔려는 시행사 측 평가사는 52억원이라고 봤다. 같은 집의 가격이 두배 이상 차이가 나니 감정평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이를 계기로 국토부는 지난주 ‘감정평가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놨다. 평가사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 근거를 상세히 남기도록 하고, 상습 부실 평가사는 영구제명키로 했다. 정부의 사후 검증 대상도 연 800건에서 2000건으로 늘렸다.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불이익을 받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끼어 있다. 연 180명인 신규 합격자 수를 2017년까지 150명으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국토부는 평가 시장의 정체와 응시자 급감에 따른 평가사의 질적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180명씩 평가사를 뽑으면 감정평가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 문을 더 좁혀야 한다는 논리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린다. 평가사들은 해마다 200명 안팎씩 평가사가 늘어온 탓에 일거리 수주 경쟁이 과열됐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한남더힐 사건처럼 의뢰인 편의에 맞게 가격을 매겨주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사들이 ‘생계형 부실평가’를 한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 국토부가 집계한 지난해 평가사 1인당 소득은 1억7500만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수입 보전을 위해 신규 경쟁자의 진입을 막아주는 것에 동의해 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정부 방안이 나온 계기는 한남더힐 사건인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금의 평가사들은 질이 높아서 이 같은 물의를 빚게 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불공정 사례가 처벌·퇴출된다는 확신 아래 치열한 경쟁이 이뤄져야 시장이 투명해지고 소비자가 유리해진다. 이런 면에서 국토부의 감정평가사 합격자 축소는 방향이 한참 어긋났다.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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