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렸던 가슴 활짝 … 1000여 오목가슴 환자에 '산타'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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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교수가 안쪽으로 휘어진 가슴뼈를 교정하는 더블바 너스 오목가슴 수술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가슴을 ‘활짝’ 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흉곽기형의 일종인 오목가슴을 지닌 사람들이다. 오목가슴은 외형뿐 아니라 내부 장기에 갖가지 질병을 초래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겐 슬픈 사연도 많다. 이들을 위해 평생 헌신한 의사가 있다. 그는 환자에게 안전하고 교정 효과가 좋은 새로운 시술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왔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흉부외과 이승진(44) 교수다. 움푹 들어가거나 한쪽으로 심하게 틀어진 가슴도 그의 손을 거치면 정상적인 가슴으로 돌아온다. 그가 수술한 오목가슴 환자만 1000여 명이 넘는다. 환자들은 그를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세상을 향하도록 돕는 ‘산타클로스’로 부른다.

오목가슴, 호흡기질환·척추측만증에 취약

오목가슴은 선천적인 가슴뼈 질환이다. 갈비뼈(늑골)와 복장뼈(흉골)을 잇는 가슴뼈인 갈비연골(늑연골)이 안쪽으로 휘면서 폐·심장 등을 심하게 압박한다. 둥글고 평평해야 할 가슴이 땅이 파인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들어간 형태는 다양하지만 보통 가슴뼈 아래쪽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1000명 중 1명꼴로 흔하지만 중증이 아니라면 본래 체형이 그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기능 장애다. 가슴뼈가 심장이나 폐를 압박해 나타난다. 영·유아라면 감기·폐렴 같은 호흡기질환에 약하다. 폐가 발달하지 못해 병이 나았다가도 다시 나빠지길 반복한다. 호흡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가슴뼈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다. 호흡이 어렵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 또래에 비해 성장이 더디고 자세가 바르지 않아 척추측만증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심리적으로도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 몸을 감추고 성격은 위축된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심유라(25)씨도 그랬다. 앞가슴이 심하게 함몰돼 몸을 웅크리고 다녔다. 체형마저 구부정하게 변했다. 검사 결과 심씨의 오목가슴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한 중증이었다. 오목가슴 함몰 부위와 등쪽 척추뼈 사이의 간격이 3㎝ 정도로 좁아졌다. 가슴뼈에 눌린 심장은 왼쪽에 있는 폐가 있는 곳으로 쏠렸다. 이 교수는 “가슴뼈가 외부 충격을 분산하지 못해 통증을 달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인 렛미인3 주인공으로 선정된 이후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도움으로 오목가슴을 치료받았다. 다행히 성인이지만 교정치료 효과가 좋았다. 심씨는 펴진 가슴만큼 자신감도 회복했다.

 오목가슴은 외과수술을 통해서만 교정이 가능하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흉부외과는 1999년 국내 최초로 가슴뼈를 절개하지 않고 보존하는 최소침습 오목가슴 교정치료법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가슴을 열고 변형된 가슴연골 뼈를 모두 자른 다음 재조합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충격을 완충할 가슴뼈가 없어 작은 충격에도 매우 취약했다. 환자의 고통이 크고, 가슴에 20㎝가 넘는 상처가 길게 남는다. 이를 보완한 것이 바로 ‘너스 오목가슴 교정수술’이다.

 너스 교정술은 겨드랑이 양쪽 밑 피부를 1~2㎝ 절개해 교정용 금속 막대인 ‘너스 바(Nuss bar)’를 삽입해 치료한다. 내려앉은 가슴뼈를 들어올리기 위해 활처럼 둥그런 교정막대를 넣고 단단히 고정한다. 일종의 가슴뼈 리모델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손기술이 필요한 고난도 수술이다. 치료 효과는 눈에 띌 만큼 좋다. 치료 직후 곧 가슴이 본래 형태를 되찾는다. 가슴뼈에 눌려 있던 장기도 제자리를 찾는다. 수술 시간이 1시간 이내로 짧고, 회복 속도도 빠르다. 흉터는 거의 없다. 이 상태로 2년가량 교정 기간을 보낸 후 교정막대를 빼면 가슴뼈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너스 오목가슴 교정 수술’ 기법 향상에 매진

하지만 너스 교정술에도 결함은 있었다. 이승진 교수의 도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너스 교정술에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끌어올렸다. 2005년에 좁은 가슴뼈 사이를 심장·장기 손상 없이 교정막대가 안전하게 지날 수 있는 ‘S자 광투시 내시경’을, 2012년에는 가슴뼈 교정 효과를 높인 ‘이중 압착 고정장치’를 개발했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의 대표적인 수술법인 ‘더블바 너스 오목가슴 수술’은 이렇게 완성됐다. 매일 수술 기법의 향상을 위한 연구에 몰두한 성과다. 이 교수는 “피부를 최소로 절개해 출혈이 적을 뿐만 아니라 흉터에 민감한 환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준다”고 말했다.

 안전성을 높인 것은 S자 광투시 내시경이다. 이 교수는 “너스 교정술은 감각에 의존해 교정막대를 밀어넣기 때문에 가슴뼈와 인접해 있는 심장·폐를 찌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며 “S자 광투시 내시경으로 교정막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빛을 투시해 10%가 넘던 합병증 발생률을 0%로 줄였다”고 말했다.

 오목가슴 교정 효과는 이중 압착 고정장치를 활용해 끌어올렸다. 두 개의 교정막대를 흉골과 늑연골 사이에 넣고 볼트를 이용해 단단하게 압착·고정한다. 가슴뼈가 본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억제해 다시 함몰되거나 한쪽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는다.   수술 후 교정기간 동안 교정용 막대가 흔들리거나 비틀어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가슴뼈를 중심으로 교정장치가 위·아래로 맞물려 구조적으로 비틀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교정용 막대가 가슴뼈에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면 오목가슴 교정 효과가 떨어지고, 움직일 때마다 주변 조직을 건드려 통증이 심해진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오목가슴 환자를 대상으로 ‘더블바 너스 오목가슴 수술’과 기존의 ‘너스 교정술’의 효과를 2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수술 시간은 19분, 입원 기간은 1.74일 줄였다. 수술 합병증 발생률은 18.8%나 낮췄다. 교정치료 기간 동안 교정막대가 뒤틀리는 심각한 합병증은 한 건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목가슴은 외관상으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누운 상태에서 물을 부었을 때 흐르지 않고 가슴에 그대로 고인다면 오목가슴을 의심한다. 감기·폐렴을 달고 산다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는다. 선천성 가슴 기형인 오목가슴은 조기 진단 및 교정치료가 중요하다. 이 교수에게 오목가슴 교정수술 치료 시기와 교정수술 기간 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 이승진 교수가 말하는 오목가슴 A to Z
“누워서 가슴에 물 부었을 때 고이면 의심을”

-오목가슴 교정 수술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

 “일반적으로 학교와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만 4~5세 무렵이 적당하다. 이 시기에는 늑연골이 아직 말랑말랑해 교정 효과가 좋다. 비교적 나이가 어려 가슴뼈 기형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덜한 편이다. 교정 수술 후 1주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다. 다만 가슴근육을 많이 움직이면서 힘을 쓰는 작업은 가급적 삼간다. 또 수술 1~2개월은 수술 부위 염증을 치유하는 기간으로 몸이 적응할 때까지 눕거나 일어날 때 옆에서 보조해 주면 도움이 된다.”

 -오목가슴 교정용 막대는 언제 제거하나

 “시술 당시 연령에 따라 다르다. 가슴뼈가 굳은 성인은 교정기간이 길어진다. 환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2년 정도 지나면 제거를 고려한다. 교정용 막대를 제거하는 시기는 12세 이하 아동은 2년, 12~16세 청소년은 3년, 16세 이상은 4년 이후다. 성장 속도가 빠른 청소년은 교정용 막대로 늑골 골절이 생길 수 있어 규칙적으로 진료를 받으며 제거 시기를 결정한다.”

 -오목가슴은 유전인가.

 “오목가슴은 열성 유전이므로 가능성이 낮다. 오목가슴 부모가 반드시 오목가슴을 가진 아이를 낳진 않는다. 부모의 유전적 영향은 무시해도 좋다.”

 -오목가슴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진다던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가슴뼈 형태는 태어났을 때의 상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대칭형이었던 오목가슴이 비대칭형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오목가슴 교정 수술 후 운동을 해도 괜찮나.

 “수술 직후에는 동작이 큰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가벼운 걷기 정도가 적당하다. 3개월 정도 지나 몸이 적응하면 달리기·수영·등산·헬스같이 혼자서 하는 운동을 권한다. 다른 사람과 서로 부딪치는 농구·축구 등은 삼간다.”

 -가슴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오목가슴을 교정할 수 있나.

 “교정할 수 없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상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다. 가슴 근육을 발달시켜 함몰 부위를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지만, 골격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오히려 오목가슴이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

글=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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