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주민증 위조해 불법 유통한 일당 적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말 70대 독거노인 A씨 앞으로 통신요금 납부고지서 한 통이 날아 들었다. 고지서에는 최신 스마트폰의 통신 요금 1000만원 가량이 찍혀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A씨는 해당 스마트폰을 개통한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A씨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만든 '가짜 신분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것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개인정보범죄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이 이처럼 사회취약계층의 신분증을 위조해 불법으로 휴대전화 6000여대를 개통한 혐의로 46명을 사법처리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9개월에 걸쳐 수사한 결과다. 이들 가운데 통신사 대리점 직원 김모(40)씨 등 25명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공문서 위조,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5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달아난 6명에 대해서는 기소 중지ㆍ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주민등록증 위조책ㆍ개통 담당ㆍ장물범 등으로 나눠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검찰 조사 결과 신모(34)씨 등 위조책들은 지난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개인정보판매업자에게 사들인 성명·주민번호만으로 가짜 주민등록증 3000여장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등록증 위조 프로그램·프린터기가 이용됐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러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의 정보만을 추려 범행을 저질렀는데, 이미 쓰고 있는 사람의 경우 또다른 휴대전화가 개통되는 즉시 당사자에게 통지가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지방 소재 요양병원ㆍ양로원 등에 거주하는 노인들이었다. 한 사람당 최대 4대의 스마트폰이 개통 됐고 한 대당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요금 폭탄'이 떨어졌다. 가짜 신분증 외에 불법 수집한 주민등록증 복사본 2000여장도 불법 개통에 이용됐다.

통신사 대리점 두 곳은 조직적으로 불법 개통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리점 직원 김모씨 등은 위조 신분증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1대당 20만~40만원의 개통 수수료를 떼고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개통해줬다는 것이다. 이후 장물 담당이 스마트폰 유심칩 20만원, 단말기는 50만~60만원에 중국 등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유심칩의 경우 대포폰에 이용 돼 전자상품권 구입, 게임아이템 구매사기, 스팸문자 발송, 보이스피싱 범행 등에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불법 개통된 휴대전화가 국외로 팔려나간 것을 통신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국내에서 계속 통화가 이뤄지는 것으로 가장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통신사는 휴대전화를 개통한지 3개월 동안 일정 통화량이 없을 경우 문제 조사를 통해 대리점에 지급한 개통 수수료를 환수하거나 페널티를 부과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국내에서 쓰고 있는 구형 중고폰의 '단말기 고유식별번호'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작해 새로 개통한 스마트폰인 것처럼 인식되게끔 만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주민등록증 위조를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13자리와 주민증 발급 일자를 입력하면 주민증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는 행정자치부의 ARS 1382 서비스나 시중 은행에서 도입한 신분증 감별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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