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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도 계산도 셀프 ‘왕 대접’ 못 받아도 편하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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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25면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종종 남의 장사를 걱정한다. 특히 새로 꾸민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갔는데 손님이 없으면 ‘여기 괜찮을까’ 마음이 쓰인다. 외식 창업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와서인데, 최근 발표된 조사도 다르지 않다. 5년간 문 열었던 열 집 중 여덟 집이 문을 닫고, 버티는 이들도 35%는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고려한단다. 식재료와 임대료·인건비 상승이 주 원인이다(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2014 외식업 경영주 설문조사’).

이도은 기자의 거기 <6> 연남동 ‘토마스 식당’ & ‘까사 데 스파키’

그래서일까. ‘셀프 식당’을 자처한 서울 연남동 ‘토마스 식당’은 불편하다기보다 신선하다. 주인은 주방에서 요리만 하고 물도, 반찬도, 심지어 계산도 셀프다. 메뉴는 오로지 등심돈까스 하나. 손님들은 메뉴판 대신 ‘토마스 식당 사용 설명서’를 숙지해야 한다. 가령 ‘계산은 냉장고 오른쪽 계산대에서 하십시오/ 현금은 주방에 문의하십시오’ 식이다. 손님이 왕이기는커녕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지만 그리 툴툴댈 일은 아니다. 33㎡(약 10평) 남짓한 식당이라 한두 발짝만 움직여도 모두 해결될 동선이다.

“2인분 나왔어요.” 음식을 받으러 목소리만 들리는 주방으로 간다. 주문하는 순간 튀김가루를 입힌다는 주인의 원칙 때문에 15분쯤 여유롭게 기다려줘야 한다. 제주 흑돼지로 만들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한 입 베어보니 참 부드럽다. 돈까스에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식감이 딱 그렇다. 살짝 육즙도 느껴진다.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고기가 벚꽃 색깔일 때 가장 맛있다’고 한다는데, 벚꽃만큼은 아니겠지만 하얀 고기 색깔이 눈에 뜨이긴 하다. 뭣보다 젓가락질 몇 번이면 튀김옷과 자체분리되는 분식집 돈까스들와는 확연히 다르다.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무국과 샐러드, 흑미밥은 화려하지 않아도 맛깔스럽다.

영업시간은 오후 9시까지지만 하루분 재료가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그 분량이 30~35인분 정도라, 점심에는 테이블 회전도 없다. 손님이 빠져나가고 한가한 틈을 타 주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딱 혼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가장 손님이 많을 일요일에 쉬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돈을 금세 벌기보다 오래 벌고 싶다는 주인의 말이 여운이 남는다.

토마스 식당의 뒷골목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가 있다. 문 연 지 한 달이 채 안 된 ‘까사 데 스파키’는 마치 친구네 집에 온듯하다. 소파 대신 침대를 놓고, 가정용 양문형 냉장고에 홀과 경계를 없앤 주방이 보통 가정집 같다. 이곳에서도 주인 혼자 커피를 내리고 차를 만든다. 특히 녹인 초콜릿 위에 커피, 그 위에 우유 거품을 얹는 ‘비체린’과 다크 초콜릿을 녹여 우유와 생크림과 섞은 ‘리얼 쇼콜라떼’ 등은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메뉴. 공정과정이 복잡하고 혼자 만드느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 맛의 보답은 확실하다. 코코아 특유의 달달함 대신 묵직한 초콜릿의 맛 그대로가 느껴진다.

연남동은 홍대 앞에서 확장된 상권이지만 아직까지 ‘동네’의 푸근함이 남아있다. 좁은 골목골목으로 재래시장과 게스트하우스, 갤러리가 혼재하는 이색적 공간이기도 한다. 그래서 골목을 나오며 그곳만큼은 가로수길, 경리단길과 다른 골목 풍경이 펼쳐지길, 소박하고 개성 넘치는 밥집과 술집, 카페들이 버텨내길 바라게 된다. 특히나 1인 가게들의 건투를 빌면서.

▶토마스 식당: 마포구 연남동 227-38, 010-8738-7624, 등심돈까스(7000원), 점심은 정오부터 오후 2시, 저녁은 오후 5~9시(24일부터 사나흘 간 내부공사 예정)

▶까사데스파키: 마포구 연남동 227-37, 02-337-1226, 비체린(6000원), 리얼 쇼콜라떼(5500원) 자정부터 오후 11시까지(월요일 휴무)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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