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 이민개혁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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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법 체류자 중 최대 500만 명에 대해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이민자의 나라고 언제나 이민자의 나라일 것”이라며 “수백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치는 합법적일 뿐 아니라 과거 민주·공화당 소속의 전직 대통령이 했던 조치와 같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최소 5년 이상 미국에서 살아온 불법 체류자 중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가 향후 3년간 추방되지 않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단 전과자는 제외된다.

 2012년 시행했던 청소년 불법 이민자에 대한 구제 조치도 이번에 확대된다. 고숙련 근로자와 과학·공학 전공 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도 50만 명 규모로 늘린다. 이에 따라 불법 체류자 1100여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최대 500만 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이는 1986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불법 체류자 300만 명에게 합법적 거주 신분을 부여한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중간선거 참패로 조기 레임덕 위기에 처한 오바마 대통령이 히스패닉을 비롯한 지지층을 재결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인 사회는 2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한인 불법 체류자 중 일부가 구제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홍일송 버지니아 한인회장은 “한인 사회는 가족을 중시한 인륜적 결정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공화당은 ‘오바마 황제’라고 부르며 반대 입장을 확실히 했다.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 개혁을 (의회와) 함께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만 하려 든다”며 “자기는 왕도 황제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마치 그런 듯이 행동하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의 마이클 매컬 하원의원은 “대통령 때문에 불법 이민자가 몰려오게 됐다”고 각을 세웠다. 일부 강경파는 정부 셧다운이나 대통령 탄핵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라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연말 대치가 불가피해졌다.

 반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롯한 온건파는 침착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어 공화당의 당론이 분열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린지 그레엄 상원의원은 “말하기 전에 100까지 세라”며 “탄핵이나 셧다운은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2016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으려면 어느 정도 히스패닉계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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