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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유출 막고 국민불안 해소-일본은 왜 실명제 실시를 5년 미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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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신성순 특파원】일본이 오는 84년부터 실시할 계획이었던 그린카드 (소액저축카드) 제도가 집권 자민당의 5년 연기결정으로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제도는 소액저축의 카드화로 일정금액 이상의 금융거래소득은 모두 종합과세 하려는 의욕적인 계획이었는데 자민당의 반대로 그 실시가 일단 보류된 것이다.
정부입법으로 추진되어온 이 제도는 자민당 세제조사회가 그동안 정부심의를 거듭, 지난달 말 5년 연기를 결정하고 이를 정부에 통보했다.
자민당의 연기결정 이유로는 이 제도가 금융자산 간의 자금이동을 격화시키고 자금의 해외유출을 유발하는 등 금융질서를 혼란시킬 뿐 아니라 동 제도에 대한 국민의 이해부족으로 심리적불안이 증대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주무부서인 대장성의 이 계획에 대해 그동안 자민당 안에서는 물론 야당간에서도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과 토의가 있었는데 이번의 정식연기결정 통고로 대장성은 크게 당황하고있다. 대장성은『실시연기일 뿐 폐지나 동결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대장성은 일단 정부안에 브레이크가 걸린 이상 의원입법으로라도 이 제도의 골격이 유지·실현되기를 기대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이번 결정으로 그린카드제 실시와 함께 실시하려던 근본적인 세제개혁도 일단 백지화되고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현재의 원천·분리 선택과세제는 당분간더 존속하게 되었다.
다만 남은 문제는 종합과세와 함께 실시하려던 고액소득자의 누진율완화와 소득세율인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조세의 공평과 직간세간의 불균형시정을 위해 오랫동안 정부가 구상해온 세제개혁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린카드제와 전면적인 종합과세를 전제로 가능한 개혁이다.
따라서 이 소득세율인하문제가 어떻게 처리될 지가 앞으로의 주목거리가 된다.
여당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금융계는 금융질서의 혼란이 회피될 것으로 보아 환영하고 있으며 그린카드제 실시를 전제로 여러가지 절세상품을 개발해온 채권시장이나 증권시장에서는 다소 맥이 빠진 느낌을 감추지 않고있다.
은행들은 그린카드제 계획발표와 함께 돈이 제로쿠폰채 (외화표시할인채)·상호부금 등 그린카드대상 외의 상품으로 대량 유출되기 시작한 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편 소액예금이 주종을 이루는 우편저금 쪽은 이 제도의 실시연기로 다시 인기를 회복, 은행예금에서 빠진 돈이 다시 우편저금으로 몰려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은행에서는 우편저금의 한도관리를 현저히 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관측통들은 이번 자민당의 결정이 고령화사회의 진전에 따라 퇴직금운용 등 노후설계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종합과세가 그들 자신의 문제로 더 크게 부각된 데 따른 반작용으로 보고있다.
이번 연기결정과 함께 자민당은 의원입법으로 소득세법 등 관계법개정안을 만들어 분리과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 제도가 연기될 경우 원천분리과세율을 현행 35%에서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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