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입담 겨뤄볼 텐가 … 랩·판소리 배틀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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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랩 판소리 대회에서 래퍼와 소리꾼이 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같은 주제를 놓고 정해진 시간 동안 대결을 펼쳤다. 1년 만에 두 번째 대회가 21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다. [사진 레드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아할까. 너 때문일까. 아니야 나 때문이지.”

 지난해 9월 서울 서교동의 브이홀. 모자를 삐딱하게 쓴 래퍼가 무대에 올라 한 손을 흔들며 랩을 했다. 그의 뒤에는 래퍼들이, 무대 반대편에는 한복을 갖춰 입은 소리꾼들이 있었다. 곧 소리꾼 한 명이 나왔다. “판소리라 하면 소리만 하는 줄 아나본 데, 발림도 있고 아니리도 있지. 한번 들어볼 텐가.”

 에너지음료 회사 레드불이 개최한 ‘랩 판소리 대회 2013’의 한 장면이다. 아마추어 래퍼·소리꾼이 각각 8명씩 나와 대결을 벌였다. 방식은 토너먼트식 배틀이다. 먼저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래퍼가 나왔다. 꿈·사랑·SNS 등 한 주제에 대해 랩을 했다. 제한 시간 1분이 지나면 소리꾼의 마이크가 켜진다. 힙합 음악을 배경으로 같은 주제에 대해 판소리를 들려줬다. 그 다음에는 국악을 배경으로 랩·판소리가 차례로 이어졌다. 관객 600명은 투표로 심사했다.

 이 대회는 랩과 판소리의 공통점에 착안해 시작됐다. 두 장르는 비트·장단에 맞춰 노래한다는 점이 우선 비슷하다. 또 판소리의 아니리는 말하듯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랩과 닮았다. 소외된 계층의 정서가 내용에 담겼고,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지난해 우승자는 판소리를 전공하는 대학생 이승민(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씨다. 그는 “즉흥성이 필요한 배틀이란 면에서 래퍼가 유리하긴 하지만, 판소리꾼들은 스토리 전달하는 훈련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판소리의 다양한 면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얻어 우승했다. 예를 들면 힙합 음악에 맞춰 “SNS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포장된 것은 슬프다. 판소리의 슬픈 구음을 들려주겠다”는 소리를 하는 식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대회 이전부터 판소리로 여러 실험을 했다. 클래식·전자 음악 등과 함께 작업해본 것. 그는 “이런 고민·경험이 대회에서도 잘 발휘됐던 것 같다”며 “독특한 대회를 통해 판소리가 대중과 접점을 늘려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올해 2회 대회가 열린다. 21일 오후 8시 서교동 무브홀에서 대학생 힙합 래퍼, 판소리꾼 총 16명이 대결을 벌인다. 올해 이들이 펼쳐낼 주제는 ‘나의 음악 이야기’다. 지난해 우승컵을 내준 래퍼들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올해 참가하는 대학생 래퍼 박준완(서울대 컴퓨터공학과 2학년)씨는 “다양한 국악 장단을 들으면서 어떻게 랩을 하면 좋을지 구상 중이다. 서양 음악과 박자 개념이 전혀 달라서 당황스럽지만 새로운 장르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는 심사위원이 점수를 매긴다.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래퍼 MC메타, 박칼린 음악감독이 참여한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MC메타의 곡에 참여할 기회와 공연 무대가 제공된다. 관람 티켓은 1만원으로 티켓링크(ticketlink.co.kr)에서 판매 중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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