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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의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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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가의 합리주의와 극기·금욕의 윤리는 전세계 누구을 향해서도 소리쳐 강조해야할 정신방침이다. 나는 금욕적 청교도주의와 민주적 합리사상을 상실한채 물질만능의 배금사상과 아욕아집의 폭력만이 난무하는 추락된 오늘의 민주주의를 그 출발의 원점으로 되돌려 인류앞날에 새로운 정신적 등불을 밝혀주는데는 이같은 유교적 전통사상이 큰힘을 가질수있다고 본다,』(유식오박사의 『말우암선생계여서』간행서문)
유박사는 흔히 유도가 카리스마적인 지배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것은 유교을 앞세위 정치를 좌우해온 지배층이 오랫동안 그렇게 이용해온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는 상하간의 관계를 일방통행식으로만 규정한다고 생각하는것은 속단이라는 것이다.
『천친 자아민친 천청 자아민청』(군왕이 천도를 체하는 길은 민심의 귀추를 바로 보는데 있다). 『서경』에 나오는 현군정치의 도다. 근대 민주주의와도 상통하는 유가의 이상인 이같은 보인·현군정치론은「플라튼」의 『공화국』 에 앞선 민주사상일뿐만아니라 어떤 사회에도 통용될수있는 충분한 합리성을 갖는다 하겠다.
그러나 유교를 인식하는 오늘의 한국적 일반현실은「마치 숲만보고 나무를 못본채 너절한 숲을 쳐내자」는 식으로 본래의 것을 탐구하기보다는 추락된 형태의 유도비판이 강세(?)를 보인다.
어쨌든 유교의 「비논」에서 비롯된 각종 예의법절은 아직도 한국인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현대속의옛날」로 엄존하면서 생활의식을 지배해오고 있다.
40대후반의 모회사 중역이 술좌석에서 토로한 유교의식의 예.
『해외를 나가게된 고교재학중인 장남이 신윈진술서 기재란의「본관」이 무엇인지를 몰라 묻길래 우선 네조상의 뿌리도 모르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내가 어릴때는 말문만 트면 어른들이「고향」을 가르쳐주며 복습(?)을 되풀이해 지겨울정도였지요.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에겐 그 같은 가르침도 없거니와「헤일리」의 「뿌리」 TV영화나 소설책은 열심히 보고 읽으면서도 자기조상의 출생지(본관)는 모르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그는 비록. 조선조 5백년동안의 유구가 형식주의에 흐르며 권위주의적인 굴곡된 지배논리에 머물다가 민중의 저변 깊숙이 파고들진 못했지만 세계인류공통인 본관의식과 같은것을 서민들의 계층문화속에 자라잡게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했다.
공자주정의「정통」을 따르는 한국 유교는 5백년동안 국교의 지위를 누렸으면서도「제도종교」로 정착, 서민들의 기도문화를 지배하는데는 실패한게 사실이다. 오히려 민중사회는 유교의 외연현상으로 음양오행설과 도참사상이 널리 유행했고 지배계층의 유교마저 본령이 흔들린 굴절속에서 많은 폐단을 낳았던 것이다.
본래의 유교는 공자의 도의사상을 총지로 하는 극히 인본주의적인 윤리의 종교다. 명덕·친민·지선의3강령으로 요약되는 유교의 기본이상과 격물·치지·성의·정신·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수행실천8조목은 유교 교리의 핵심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이 준 인의비지의 인성을 닦아 지천명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원형리정의 천도와 합일, 무위이성에 도달하려는게 신앙의 목표다.
유교의「비논」은 한마디로 만사에 질서를 지키는 것이 예요, 만물에 조화를 이루는게 악이라는 것이다. 유교는 안다는데 그치지않고 강한 실천윤리를 추구, 사람된 도리대로의 바른삶을 살도록 강조한다.
따라서 유교도 선덕을 쌓고 도리를 다할것을 강조하는 점에서 궁극의 목표가 다른 종교들과 동일하다.
이제 유교의 당면과제는 현대사회속에서 호흡할수있는 유교사상의 재발견을 서둘러야할 것같다.
예컨대 정도·강직·충절·청빈등으로 요약할수 있는 유가의 선비사상은 오늘에도 소망스런 고유한국사상의 하나로 재정립됨직 하다하겠다. 주체의식과 고유 전통문화가 그처럼 강조되면서도 이렇다할 한국사상의 정립이 없는게 오늘의 한국 정신사 현실이다.
정부의 서정쇄신·사회정학·질서운동등도 선비사상같은 유교정신에서 이미 거듭 강조돼온 덕목이라고 볼수있는 것이다.
제위만해도 유교의 폐습이라기보다는 번문욕례의 비뚤어진 형식주의만 극복한다면 훈훈히 엄숙하고 성스런 종교의례임에 틀림없다는게 많은 종교학자들의 주장이다. (정당홍서올대교수)
한국유교는 이제 먹기도 버리기도 아까운「학동」의 존재로 방치하기보다는 추락된 형태등을 과감히 버리고 본령을 되찾아 현대적 재조명을 할수있도록 능동적인 노력을 가일충 활성화해야겠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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