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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40년 … 그리움의 붓질, 고향집 닮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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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붓질의 다이어그램-4월 16일 세월호 비극을 생각하며 그림’ 앞에선 재독화가 송현숙. [권근영 기자]

재독 화가 송현숙(62) 씨의 그림은 ‘고전적’이다. 캔버스에 템페라로 슥 그은 듯한 추상화에 ‘5획’ ‘7획 뒤에 인물’ 같은 제목을 붙였다. 서예의 일필휘지가 연상되는 이 그림을 위해 매일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집 옆 작업실에 틀어박힌다. 재료는 유화나 아크릴 물감이 아닌 템페라, 유화 물감이 보급되기 전 중세 서양에서 사용한 달걀 섞은 안료다. 흙색이나 풀색 바탕에 큰 붓으로 한 획 한 획 그었지만 그저 추상적이지만은 않다. 갈색으로 죽 내려그은 선은 바지랑대를 닮았고, 붓자국이 드러나는 흰 가로선은 거기 명주천을 묶어둔 것 같다. 과거 고향집의 어떤 풍경이랄까. 송씨의 그림이 사랑받는 지점은 거기 있다.

 생활 또한 고전적이다. 독일 함부르크 집에서 닭과 벌을 키운다. 남들은 잔디 가꾸는 정원에서 마늘·쑥갓·들깨·미나리도 기르며 자급자족한다.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도 이제는 흔치 않을 생활 방식을 독일에서 40년 넘게 사는 화가가 유지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한국에서는 그 사이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줄었다. 말투도, 생활 방식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송씨는 70년대 전남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가끔 당황한다. 우리말에 외래어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림은 그리움’이라고 했던가. 그는 1972년 한국을 떠났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4년간 병원에서 일했다. 8남매 중 넷째, 동생들의 학비를 대다가 77년 함부르크 미대에 진학하면서부터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85년엔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한국으로 역(逆) 유학을 와 전남대 미대에서 동양화와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 당시 그를 가르쳤던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송씨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했다.

 송현숙의 그림은 ‘중간’이다. 맑지도 탁하지도 않다. 한 획 한 획 그은 붓질은 탄력이 넘치지만 바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림 ‘5획’ 속 흰 획은 두 말뚝을 잇는 천 같다. 그의 삶 또한 ‘중간’이었다. “그림을 통해 내가 누구이고 뭘 할 수 있는지,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는 그는 “거기서 독일 여권 있는 독일인이라 한들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선 제게 ‘재독’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쪽과 저쪽을 저는 팽팽하게 자르기보다 유연하게 잇고 싶다”고 말했다.

 송씨의 개인전이 12월 31일까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평상시와 다른 제목의 그림도 걸렸다. 검은 바탕에 흰 붓질을 수없이 반복해 그린 기울어진 형상이다. 속엔 신발들이 숨어 있다. ‘붓질의 다이어그램-4월 16일 세월호 비극을 생각하며 그림’이다. “신발은 육체가 사라지고 남은 흔적이다.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고,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가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렸다”고 그는 설명했다. 02-720-1524.

글, 사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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