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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리 Z Z Z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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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혜성을 탐사 중인 유럽의 탐사로봇 ‘파일리’가 모든 기능이 중지된 ‘동면’ 상태로 들어갔다. 유럽우주국(ESA)은 혜성이 태양에 근접하는 내년 8월쯤 재가동되길 바라지만 장담할 순 없는 상황이다.

 ESA는 15일 오전 0시 36분(협정세계시) 교신 이후 파일리와의 연락이 끊겼다고 밝혔다.

 파일리는 목성 주변의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67P)에 목표지점에서 1㎞쯤 떨어진 절벽 아래 경사면 음지에 기우뚱한 자세로 내려앉았다. 하루 6~7시간 정도 햇볕에 노출돼야 하는데 충전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해 태양전지를 못쓰게 됐다.

 ESA는 착륙 장치를 조정해 파일리의 몸체를 4㎝ 올리고 35도 정도 회전시켰다. 가장 큰 태양전지판이 햇볕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배터리가 방전됐다. ESA는 67P 혜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내년 8월 전후엔 태양전지가 충전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선(母船)인 로제타호를 통해 파일리의 위치를 계속 추적 중이다.

 파일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착륙 후 방전까지 57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마크 매코린 엑시터대 교수이자 ESA 자문관은 “파일리에 탑재된 모든 과학 기기들이 예정됐던 일을 다 해냈다”고 전했다. 특히 막판엔 시료 채취를 위해 지표면 아래 25㎝까지 파 내려갔다. 마지막에 보낸 데이터가 혜성의 유기물을 분석한 것이다. 혜성으로부터 유래한 유기물 덕분에 지구에서 생명체가 생겨났다는 가설을 검증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매트 테일러 박사는 “파일리와 로제타호가 보낸 데이터는 혜성과학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일리는 동력 상실 전에 자신 명의로 트위터 계정에 글을 남겼다. “혜성에서의 삶이 시작됐지. 새 집인 혜성 67P에 대해 곧 얘기해 줄게… ZZZZZ(쿨쿨쿨)”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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