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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무원연금 문제, 대화로 풀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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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갈등해결연구센터장·겸임교수

얼마 전 여당 대표와 공무원노조 대표가 만났다. 공무원연금 문제로 끝장 토론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끝장 토론은 30분 만에 끝장나고 말았다. 대화와 토론이 잘 안 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었다. 연금 개혁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거기에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었다. 근 600년 전 세종대왕의 조세개혁 추진 과정이다. 세종은 불합리하고 수많은 비리로 얼룩진 조세제도를 개혁하려 했다. 하지만 세부담이 커지게 될 정승과 사대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세종은 정승들과의 끝없는 토론은 물론 전국 17만 호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과거시험에 조세개혁 방안을 묻는 문제를 내는 등 널리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런 식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개혁안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데 걸린 기간은 장장 18년. 그렇게 해서 사대부들의 반발도 진정시키고, 이후 조선왕조 600년을 지탱하는 근간이 된 새 조세제도를 안착시키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모두 인정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개혁에 성공하려면 염두에 둬야 할 대원칙이 있다. 개혁안을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과 방법이란 사실이다. 그 핵심은 모든 문제를 관련 당사자들과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위해 공무원들의 양보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공무원 대표들과 머리를 맞대고 문제해결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그 자리에는 세금을 부담하는 시민 대표도 참여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자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최선이고 지름길이다. 연금개혁 문제를 대화로 원만히 풀어가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공무원을 연금 개혁의 적으로 몰지 말고 협의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요즘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반발하는 공무원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연금 감축안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 등 정부 요직을 역임한 이가 얼마 전 사석에서 토로한 우려 섞인 진단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과 공무원 간에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공무원 대상 조사에선 99%가 반대인 반면 일반 국민 중엔 찬성 여론이 훨씬 많게 나온다. 공무원들의 반발을 ‘기득권층의 밥그릇 지키기’로 여론몰이 하기 쉬운 구도다. 그럴 경우 정부로선 연금 개혁의 추진력을 배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도 오히려 도움될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 집단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추진해야 하는 개혁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

 둘째, 공무원들에게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정부가 해야 할 것이 있다. 정부에 책임이 있는 것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의 연금재원 부족 사태가 빚어지게 된 것은 그간 정부가 연·기금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게 주된 원인 중 하나란 지적이다. 연금 운용상의 비리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은 정부가 저질러 놓고 책임은 연금 수급자에게 돌리는 꼴이다. 정부는 먼저 연·기금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연금 운용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 재원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공무원들에게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 역량이다. 꽉 막힌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창의적이고 상생적인 해결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기획 예산 업무를 총괄했던 전직 장관은 “연금 재원이 부족하다고 숫자 맞추기 식으로 연금감축안을 만들어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접근법”이라면서 해결책의 하나로 “연금 감축을 공무원 정년 연장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을 맞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인력 낭비의 손실이 크다. 연금감축안과 연계해 정년 연장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공무원들의 수용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만큼 연금 재원도 절약할 수 있다.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오스트리아의 경우도 연금 개혁과 재직기간 연장을 연계 추진한 바 있다. 정년 연장으로 공무원 숫자가 느는 만큼 인허가 기간 단축 등 행정효율이 향상되도록 하면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점차 민간기업에 확산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서로 머리를 맞대 궁리하고 의논하다 보면 공무원들의 협조를 끌어내고 공익에도 부합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는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문제 등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이런 사안들을 대화와 상호 협력을 통해 해소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대로 가면 공무원연금 개혁도 정부가 밀어붙이고, 이해 당사자들은 반발하는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할 뿐이다. 1인당 소득이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갈등을 얼마나 무리 없이 세련되게 소화하느냐도 선진국의 척도 중 하나다.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갈등해결연구센터장·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