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객 블랙홀’ 두바이, 올해 세계 1위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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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3일 두바이국제공항의 A380 전용 탑승동(탑승동A) 앞을 에미레이트항공의 여객기들이 오가고 있다.(왼쪽) 14일 오전 0시를 조금 넘긴 시간 탑승동B의 면세점 앞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두바이=김한별 기자]

14일 오전 2시45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국제공항 제 3 터미널. 이탈리아에서 신혼여행을 마친 심재원(33)씨 부부는 한국으로 가는 에미레이트항공편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씨는 “우리나라 국적사 직항편도 있었지만 중간에 두바이 관광을 하기 위해 일부러 환승편을 골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두바이에서 하루를 묵으며 시내 관광, 사막 투어를 했다. 심씨는 “귀국편이 새벽에 출발해도 공항 면세점·커피점 등이 24시간 운영돼 큰 불편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곳 터미널에선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매 5분 간격으로 국제선 항공편이 이륙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8편 뿐이었다.

 두바이가 ‘세계의 항공수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영국 히드로공항에 이어 여객 수 세계 2위(6643만 명)를 기록했다. 항공업계는 “두바이공항이 올해 세계 1위로 올라설 게 확실하다”고 전망한다. 2002년에는 인천공항에 뒤졌던 두바이공항이 불과 12년 만에 압도적으로 인천공항(지난해 세계 9위)을 추월한 것이다.

 두바이공항은 지난해 초대형 여객기 A380 전용 탑승동을 확장했다. 연간 수송능력을 6000만 명에서 7500만 명 규모로 키웠다. 저비용항공사(LCC)·전세기가 이용하는 제2터미널도 올해 말까지 기존 규모(연 500만 명)의 두 배로 키울 예정이다. 론 라일리 두바이공항 홍보·마케팅실장은 “2020년이면 연간 이용객이 1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바이 인구(210만 명, 83%는 외국인)의 50배나 되는 규모다.

 두바이의 야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여 떨어진 아부다비 인근 사막에 새 공항(알막툼)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여객터미널은 연 500만 명 규모였다.

하지만 두바이 정부는 최근 320억달러(약 34조 원) 규모의 확장 계획을 승인했다. 두바이공항이 포화상태가 될 것에 대비해서다. 2020~2022년 1단계 확장공사가 끝나면 알막툼공항의 여객처리 능력은 1억2000만 명이 된다. 최종 목표는 2억 명 규모다.

 두바이공항을 허브로 하는 에미레이트항공도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 1985년 파키스탄 여객기 2대를 빌려 영업을 시작했지만 현재 보유 여객기는 217대다. A380만 53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취항 노선은 142개로 여객순위 세계 4위(4453만 명)를 기록했다.

 두바이공항과 에미레이트항공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환승객 유치에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두바이는 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를 잇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비행기로 4시간 이내, 3분의 2가 8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두바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이용요금을 낮춘 것도 큰 몫을 했다. 그 결과 현재 두바이공항 여객의 75%, 에미레이트항공 승객의 80%가 환승객이 됐다.

 두바이가 이렇게 ‘블랙홀’처럼 환승객을 빨아들이다 보니 유럽-한국을 직항으로 잇는 우리 국적사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배리 브라운 에미레이트항공 극동·호주담당 수석부사장은 이에 대해 “에미레이트항공의 한국-유럽노선 점유율은 5% 뿐이다. 국적사에 없는 다양한 노선을 제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송기한 항공정책·정보분석실장은 “현재의 추세가 계속 되면 중동 항공사들의 유럽노선 점유율이 10~2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비하는 방안으로 송 실장은 “EU와의 항공자유협정(오픈스카이)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우리 국적사의 취항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두바이에 맞서기 위해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공항의 여객수용능력은 현재 연간 4400만명이다. 2017년 말에 제 2 터미널이 문을 열면 6600만명이 된다.

두바이=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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