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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 따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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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22일 결론을 내렸다. 올 초부터 국정원 등 정부기관 보유 자료 400여 건을 검토하고 전직 중앙정보부 직원 7명 등을 면담 조사한 결과다. 진실위에 따르면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김지태 전 삼화고무 사장(82년 사망)은 62년 4월 부정축재처리법 등 9개 혐의로 구속됐다. 2, 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씨는 조선견직 등 기업체와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등 언론사를 소유한 부산 지역의 유력 기업인이었다.

진실위 측은 "김씨 유족들은 5.16 당시 박 의장이 지역 언론인을 통해 김씨에게 쿠데타 자금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재산을 빼앗은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 김지태씨가 부산일보 기부승낙서에 썼다는 날짜 글씨.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첫 '二'자와 나머지 '一'자의 잉크 색상 농도가 달라 변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二자라면 김씨가 구속 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쓴 것이 되고, 三자라면 석방된 다음이다. 왼쪽은 육안, 오른쪽은 현미경 투과광 사진.[국정원 제공]

구속된 김씨는 그해 5월 24일 군 검찰에서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그 다음날인 25일 김씨는 최고회의 법률고문에게 재산에 대한 포기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6월 20일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기부승낙서에 서명날인을 했고, 22일 박 의장 지시로 풀려났다. 진실위는 "그러나 구속 중 서명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부승낙서 작성 일자(20일)의 한자 2(二)에 한 획을 그어 3(三)자로 위조, 석방 후 쓴 것처럼 꾸몄다"고 밝혔다.

김씨가 구속된 상태에서 강제로 헌납한 재산은 당시 돈으로 8500만원. 부산일보 등 3개 언론사 주식과 부일장학회 재산이던 토지 10만여 평이다. 진실위 측은 "김씨가 헌납을 거부할 경우 자신이 소유한 다른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일단 실형을 모면하고 싶어 기부승낙서에 날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씨의 헌납 재산을 기본으로 해 5.16장학회가 설립되고 이후 정수장학회(82년)로 이어져 왔다.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김씨를 구속한 것은 "개인비리 정보가 수집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진실위 측은 박 의장의 지시로 수사 대상이 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중정 부산지부장이던 박모씨가 62년 2월 박 의장을 만나기 전 작성한 '정치인 실태보고서'에서는 김씨를 "부일장학회 장려로 인하여 국가에 큰 도움이 되며…"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진실위 측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박 대통령과 유족을 중심으로 운영돼온 정수장학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김씨의 유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실위 안병욱 간사위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누가 보든지 공공성에 입각해 장학회가 운영돼 왔다면 유족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진실위 조사에서는 한계도 드러난다. 사건의 핵심인 '박 대통령의 수사 지시'에 대한 직접증언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만 중정 부산지부 보고서 등의 정황만 근거로 제시했다.

◆ 부일장학회는=1958년 11월 김씨가 토지 10만147평을 기본재산으로 설립했다. 4년간 1만2364명에게 17억7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혜택을 받았다. 62년 박정희 정권에 몰수돼 5.16장학회로 출범했다. 82년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자씩 딴 정수장학회로 바뀌었다. 9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에 취임해 올 2월 사퇴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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