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힝클리」무죄평결로 미국전체가 "발칵" |백악관도 불만, 정신이상자 보호 등 현행법 개정논의 나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통령저격범에 무죄 평결―..
미국전체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불과 1년3개월 전,「존·힝클리」(27)가 워싱턴 힐튼호텔을 나서는 「레이건」대통령에게 권총을 발사하는 모습은 환호하던 수백 명의 워싱턴시민들이 직접 목격했고, 수 시간 후 2억 이상의 미국인과 수십 억의 세계인들이 그 광경을 TV를 통해 똑똑히 보고 전율했었다 그의 재판은 지루할 이만큼 15개월이나 끌었다.
미국의 법 제도상 재판과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시민들 중에서 「힝클리」가 결국 사형 아니면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힝클리」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졌으니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12명(남자5, 여자7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힝클리」에게 무죄평결을 내린 이유는『범행당시 「힝클리」정신상태가 「비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정부측 (검사) 에서 범행당시의 「힝클리」가 「정상」이었다는 납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도 된다.
그 동안의 재판과정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부분도 바로 이점이었다.
「힝클리」의 변호인들은「힝클리」가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배우 「조디·포스터」양이 출연했던 영화『택시운전사』를 15번이나 관람했고, 예일대학생이던 그녀를 만나려고 10번이나 대학촌을 찾아갔다는 사실, 그리고 급기야 「포스터」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국대통령을 저격하기로 마음먹은 과정 등을 상세히 밝히면서 「레이건」대통령을 저격할 당시의 「힝클리」의 정신상태는 도저히「정상」으로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힝클리」는 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누면서도 그러한 행동이 엄청난 범죄행위라는 판단을 할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힝클리」에게 필요한 것은「형사처벌」이 아니라 정신치료라는 얘기였다.「힝클리」는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해왔다는 증거가 수없이 제시되고 41명의 증인들도 대부분 체포 후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힝클리」를 나무라기보다는 방황하는 그의 정신상태를 우선 치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콜로라도주에서 석유관계 사업으로 큰부자가 된 「힝클리」의 아버지는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와 빈센트 풀러와 같은 그 방면의 최고권위 변호인들을 동원, 아들의 변호에 온 정열을 쏟았었다.
「힝클리」부모들은 법정에서 증언해준 심리학자들에게 하루 평균 1천∼1천 5백 달러씩을 지불했으며 4명의 전담 변호사들에겐 최저 50만 달러가 변호 비로 지불 됐다.
미국정부는 「힝클리」의 보호와 재판, 심리분석작업 등을 위해 그 동안 2백만 달러를 사용했는데 그 경비 중 3분의1 이상은 「힝클리」 아버지가 자청해서 부담했다.
「힝클리」재판이 끝난 뒤「월리엄·프렌치·스미드」미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신이상자의 변호권리를 규정한 현행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 「레이건」 행정부의 불만을 대변했다.
「힝클리」의 변호인들은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힝클리」의 석방을 조급히 서두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힝클리」의 무죄평결로 빚어진 미국시민의 분노는 배심원재판의 사법제도에 대한 회의로 번지고있다.
이번 재판의 배심원들은 흑인이 70%라는 워싱턴지역 주민분포에 따라 12명 중 11명이 흑인이었으며 전직 수위인 64세의 노인도 수석배심원이었다.
배심원의 직업은 22세의 호텔종업원·전직공무원, 초등학교 식당종업원, 병원사무원 등 사회적으로「중이하층」이 대부분이며 이들의 교육수준도 고등학교졸업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배심원들은 워싱턴지역 주민가운데 컴퓨터의 무작위 추출로 선출된 사람들이어서 정신분석문제에 대해 모두 문외한들이다.
배심원제도의 허점은 70년대 초 워터게이트사건의 심리 때도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욕지역 연방배심원은 「미첼」전 법무장관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었는데 이 때 배심원들의 대부분이 지하철승무원, 식당종업원 등 「중 이하」층들이었다.
판사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량만 정하고 컴퓨터가 뽑은 주민대표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현행 미국의 사법제도가 복잡한 오늘의 미국사회에서 과연 효과적이냐는 의문이 「힝클리」재판을 계기로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인권단체와 「힝클리」의 입장을 변호했던 심리학자들은 이번 평결에 환호성을 보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지도자들은 「힝클리」재판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비극』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가 됐다 (볼티모선 지) 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과연 인권의 천국인가, 아니면 미국사회가 점차 병들어 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까?【워싱턴=김건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