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속도로 순찰대의 봉사정신에서 바람직한 경찰청을 보았다|경찰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프랑스의 치안총감 「사르틴」이 어느 날「루이」15세에게 속삭였다.
『폐하, 거리에서 세 사람이 모여 얘기하면 그 가운데 한 명은 우리사람입니다』
당시 프랑스 정치 경찰은 막대한 돈을 풀어 시민들을 매수했다. 파리시내 하인과 하녀의4분의1이 경찰정보원이었다.
조금이라도「루이」왕조를 비방하는 사람이면 증거가 불충분해도 영락없이 투옥됐다.
「루이」왕조가 이처럼 강력한 경찰국가를 영위했어도 18세기 파리시민이 런던시민보다 범죄로부터 더 잘 보호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오히려 프랑스 대혁명으로 얼마 후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을 뿐이다.
중국 전국시대 기은 상폐를 기용하여 존엄한 법치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10년 후 사회기강은 바로 잡혔고 도둑은 사라졌으며「길가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자가 없었다(도불습유)」. 생산은 장려되고 군사는 강건해졌다.
그러나 상앙의 최후가 비참한 것은 차지하고라도 이때 기론 국력으로 중국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기이 20년도 못돼 망한 것은 역사책에서 배워 다 아는 사실이다.
너무 심각한 예를 들어 뭐한 것 같지만, 시대가 바뀌어 경찰의 모습과 기능은 달라졌어도 경찰을 불신하는 뿌리는 역시 경찰이 공중의 이익에 봉사하기보다 권력의 수중에 농단 된다는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각 국은 이 같은 경찰력의 권력예속을 막기 위해 온갖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법무성 산하의 FBI를 제외하면 국립경찰은 존재하지 않으며 중앙집권 화된 경찰을 가진 나라도 지휘권을 지방장관에게 이양하고 있다.
특기할 일은 나라의 안위에 해를 끼칠만한 중대한 범죄는 모두 비밀 석보 조직의 손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이다.
역세 같지만 비로소 경찰은 권력의 수중에서 떠날 때를 만났으며 솔직히, 얘기해 우리실정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이제 경찰은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해 민중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본래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 때가 온 것이다.
최근 우리의 국립경찰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권력자의 경찰력 남용이 아닌 경찰력의 자질과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뜻밖」의 일이다.
경찰관의 자질과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현대국가에선 경찰이 얼마나 법 집행의 재량권(discretion)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가를 꼽는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가 아무리 현대국가가 법치국가라 하더라도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에 법률위반여부를 판가름할 만큼 세밀한 법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습법의 천국인 영국에서는 7백 여 년에 걸쳐 수십 만가지 법규가 마련됐다.
「공공교통시설에서 초콜릿을 먹지 말 것」
「크리스마스 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달리기, 뛰어넘기, 궁도에 한함」
「일요일에 어머니가 유아용 우유를 구입하는 것은 위법임」
지금도 영국의회는 해마다 수백 건씩의 법률을 폐지한다. 65년이래 2만8천 여건의 법률이 개정대상에 올랐으며 이 가운데 1만6천 건은 폐기됐다. 법으로써 인간행위를 일일이 규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웅변해 주는 일이다.
두 번째 원칙이 법률의 선택적 적용. 세 번째가 사소한 위반자의 법정부 출두 원칙이다.
이것은 모두 경찰력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으며 구체적으로 경찰은 위법을 증명하는 증거의 제출을 의무화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박상은 양 피살사건과 윤경화 노파 살해사건에서 경찰은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범인검거만을 경찰의 유, 무능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경찰이 세계최고수준임은 누차 지적됐다. 미국경찰의 강력범 검거율이 20%안팎인데 비해 우리는 90%선을 넘는다.
범죄발생률의 증가를 경찰의 범인체포 능력부족으로 돌리고 사건이 날 때마다 범인을 잡으라고 채찍질하는 것은 까딱하면 번 찰상을 왜곡시키기 쉽다.
시민 스스로가 법률의 올가미를 뒤집어쓸 우려도 있다.
경찰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시골경찰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유유자적한 가운데 하는 일은 순찰뿐이며 온종일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어쩌다 일어나는 사건은 사소한 말다툼뿐 경찰도 이웃도 모두 한가족처럼 지내는 곳에선 도대체 범죄의 씨앗이 자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우범곤 순경이 한지로 좌천됐다해서 총기를 난사한 것은 매우 시사적인 일이다.
이런 이상적인 경찰 상은 한국에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단계로 어떤 경찰이 이상적일까. 그것은 도시의 봉사경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국경찰은 하루 40㎞를 걷는다. 순찰도중에 범죄발생을 목격하는 일은 매우 드문데도 순찰은 영국경찰의 가장 큰 임무다. 경찰관의 존재 하나만으로 범죄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더욱 중대해질 사건을 미연에 극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연하게 목격한 안민들의 위급한 상황에 재빨리 도움을 베풀 수도 있다.
최근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가 운전사의 갑작스런 하반신 마비로 위기에 처했을 때 2명의 경찰관이 12㎞를 쫓아가 세워준 일은 봉사경찰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45명의승객의 운명은 어찌되었을지 아찔한 이야기다.
또한 밀수트럭을 적발한 순경이 5백 만원의 뇌물을 뿌리친일도 흐뭇한 일이다. 사실 알려지지가 앉아서 그렇지 이렇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경찰관은 우리주변에 많으리라.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불행한 사건을 교훈 삼아 우리의 경찰 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한번 기대해 볼만하다 .<김성호(본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