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늘어만 가는 사면폭, 권력 맘대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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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권이 추진 중인 광복 60주년 대사면의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초 사면 대상자를 650만 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다가 화물 과다적재 전과자 25만 명을 추가한다고 하더니 또 다시 단순 음주운전자도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면 규모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다. 확실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정치적 이득과 편의만 고려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대사면 건의 계획을 밝히면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면허정지.취소자들은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그래 놓고선 인터넷 등을 통한 항의가 빗발치자 사고가 없는 단순 음주운전자는 포함시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화물 과다적재자가 650만 명에 포함되는지를 놓고서도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렇듯 서로 다른 말들을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고 있으니 즉흥성.선심성 사면이란 비판이 나온다. 오죽하면 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자신의 사건 번호.요지와 함께 사면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을까. 자고 나면 몇 십만 명씩이 불어나니 이러다간 중범죄자마저 사면을 요구하고 나설지 모를 일이다.

여당 인사들은 이번 사면이 '민생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단순 과실범이나 행정법규를 위반한 서민들의 전과기록과 벌점 등을 없애줌으로써 사회 활동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생계형 범죄로 인해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최대한 덜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법치의 기본을 흔든다는 다른 측면도 있다. 그러니까 사면은 절제되어야 한다. 이번 사면 대상에는 불법 대선자금과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 대통령 측근 인사를 비롯한 대상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몇몇 정치인을 봐주기 위해 사면 대상자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면은 사법권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준법의식을 약화시킨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사면은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