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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지고 빚더미에 |「아르헨」풍전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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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르헨티나군부가 그렇게 큰 소리쳤던 포클랜드전쟁이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끝남으로써 아르헨티나 국민감정은 분노 쪽으로 기울고 포클랜드사태로 가렸던 정치·경제적 혼란이 표면화되면서 패전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포클랜드 주권선언과 무력점령으로 국민단합에는 일단 성공했고 전쟁하의 비상사태로 정권을 이어왔으나 이제는 패전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과 전쟁으로 인해 더 심해진 국내경제혼란을 현 「갈티에리」정부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중견장교 그룹들이 항복으로 끝난 것에 반발하고 나선다면 지도층의 개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예측되고있다.
이제 휴전(아르헨티나의 표현)이든 항복이든 포클랜드전쟁은 끝났으니 「갈티에리」정권의 과제는 포클랜드 주민문제를 외교적으로 어떻게 성사시키느냐와 국내경제의 조속한 안정 등이며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한다면 퇴진의 길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년간 1백50%의 인플레와 페소화의 잦은 평가절하, 불경기로 인한 15%의 높은 실업률, 그리고 3백60억 달러의 외채부담을 안아 경제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돼있다.
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유럽에 대한 수출의 길이 막혔고 변기·탄약을 사들인 비용과 파괴된 항공기·병기들을 합치면 수십 억 달러가 넘는다. 성능이 좋다는 프랑스 제 엑조세미사일만도 보통 때 국제가격이 개당 25만 달러이나 아르헨티나는 국제무기시장에서 60만∼1백만 달러씩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백40억 달러의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아르헨티나로선 외화보유고가 바닥나 각 외국은행에 지불연기를 요청하는 형편이다. 아르헨티나는 76년 군부 쿠데타 후 모두 2백60억 달러의 외채를 빌어왔으나 이중 1백20억 달러는 외국에 다시 뿌려 그 동안 국내생산성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 외국 빚을 얻어다가 사치품을 사거나 해외관광 아니면 브라질이나 미 플로리다에 별장과 땅을 사들이고 달러를 외국은행에 예금시켜놓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정치·경제의 불안으로 국민들의 재산해외도피가 늘고, 국내에 있으면서도 폐소 화보다 달러를 지니고 있으려는 경향 때문에 달러환율은 1년여 동안 7배로 뛰었다. 81년 초 1달러에 2천 페소이던 것이 지금은 1만4천 페소로 상상도 못할 만큼 평가 절하됐다. 암시장에선 2만2천 페소까지 거래되고, 암거래 자는 징역형에 처한다고 해도 여전하다. 환율이 오르면 바로 물가를 자극해 생필품 값이 매일 달라지지만 임금에 대해선 정부가 억제정책을 쓰고 있다. 이 바람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떨어져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작년 12월 쿠데타로 집권한 「갈티에리」대통령은 경제학자「로베르토·알레만」박사를 경제장관으로 임명, 긴축경제로 인플레이션을 떨어뜨리겠다고 장담했지만 포클랜드전쟁으로 계획이 깨진 정도가 아니고 더 악화만 시키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같티에리」가 포클랜드전쟁에서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 주권선언까지는 좋았지만 확전이 되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여러 차례 협상을 성사시킬 기회가 있었으나 모두 놓쳤다는 주장이다.
전쟁수행 동안에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군부 안에서도 포클랜드문제로 의견대립이 있었고 3인 군사평의회에서도 강온 파로 갈렸었다. 육군참모총장을 겸한 「갈티에리」(55) 와 해군참모총장「아나야」(55)가 강경파이고 공군참모총장 「라미·도소」(53)가 온건파였다.
「라미·도소」공군참모총장은 공공연히 군사 평의회를 개편해야한다고 말하고 각 분야를 망라한 비상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식통들은 아르헨티나 군부 안에서 다음 실력자로 「라미·도소」를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고 있으나, 그는 탱크와 소총수를 가지고 있지 않아 단독으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약점을안고 있다.
그러나 군부 안에서 그와 손을 잡지 않고는 아무도 실력자로 나설 수 없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군에서는 「마리오·메넨데스」포클랜드사령관이 항복 당사자임에도 유력한 후보로 등장하고 있고, 2∼3명의 군단장 급과 전혀 새로운 영관 급 장교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국내문제와 포클랜드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포클랜드 주권협상은 이제 시작이며 국내 경제문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포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 군이 철수한 다음 어느 때든 본토 공군기들이 영국주둔군과 함대에 기습공격을 가할 것도 예상되나, 국민들이 이제 더 전쟁을 원치 않고, 주도권을 쥔 공군참모총장이 온건파이기 때문에 당장 그런 군사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붸노스아이래스=이영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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