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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다시 불거진 토지 공개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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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토지 소유 실태 공개 뒤 공개념법 89년 수순 밟나

정부가 15일 땅 소유 실태를 공개하면서 토지 공개념 도입 논쟁에 불이 붙었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토지공개념의 도입 주장이 나온 데 이어 열린우리당에서도 도입 방안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정부가 16년 전 토지 공개념 도입 때도 땅 소유 실태를 먼저 공개한 뒤 여론몰이를 한 적이 있어 정부가 공개념 강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 토지공개념=토지의 소유권은 크게 이용권.수익권.처분권으로 나뉜다. 국가가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이용권과 수익권, 경우에 따라서는 처분권까지 관리하는 것이 공개념이다. 이렇게 하면 사회주의 국가처럼 토지를 직접적으로 몰수하지 않고도 실질적으로 토지 공유화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78년 당시 신형식 건설부 장관이 국회에서 "토지 사유 개념은 시정돼야 한다. 건설부는 토지의 공개념에 입각한 각종 토지정책을 입안 중에 있다"고 밝히면서 '공개념'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88년 '8.10 부동산대책'에서 '토지 공개념에 바탕을 둔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선방침'을 발표한 뒤 정책토론회와 국민 대토론회를 거쳐 89년 말 공개념 법안을 확정했다.

◆ 일부 시민단체 정부 압박=토지정의시민연대는 심각한 토지 소유 집중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친화적'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되 생산과 유통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근로소득세.법인세 등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조세개혁'과, 개발이익환수장치의 정비.강화를 통해 국지적.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토지연대는 "위헌 혹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던 것은 토지 공개념의 정신이 아니라 택지소유상한제 등 잘못된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그동안 개발이익 환수를 주장해 왔다. 경실련은 소유 실태가 발표된 직후 "일제시대에도 지주의 토지 소유 실태를 알려주는 자료를 공개했다"며 "'토지.주택 정보공개법'을 제정해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부동산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도 강력한 토지 공개념제도를 전면 재도입하고 땅부자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안에서도 공개념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온다.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은 "토지 소유 편중이 심화된 것은 토지 공개념이 후퇴하고, 개발이익이 대부분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고 있는 제도의 맹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여러 제도에 공개념 녹아 있어=정부는 토지 공개념이 과거 위헌 결정으로 퇴색된 만큼 이를 다시 꺼내드는 데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택지소유상한제 등의 부활이나 보완만으로는 실제 시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토지에 대해서는 이미 소유권을 제한하는 제도를 여럿 만들었기 때문에 공개념이라는 이름 아래 추가로 제한할 경우 땅 주인의 반발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토지 소유권 제한 조치로는 ▶거래 제한(토지거래허가제)▶세금 중과(토지투기지역)▶시세를 밑도는 보상(토지보상제)▶건축행위 등 각종 개발행위 제한(그린벨트) 등이 있다.

정부는 사적 개발이익의 환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예컨대 토지에 대해 보유세를 강도 높게 매기면 '개발이 될 경우 10~20배에 이르는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잠재울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공시지가의 현실성이 높아져야 하고 주택과 달리 토지는 매매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부담금을 통한 개발이익 환수도 검토 대상이다. 현재 부처별로 토지에 대한 부담금은 개발제한구역훼손부담금.농지조성비.광역교통시설부담금.개발부담금.수익자부담금.시설부담금 등 무려 20여 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활용되는 것은 농지조성비.대체초지조성비 등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담금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엄격히 적용한다면 개발에 따른 이익을 공공용도로 돌릴 수 있다. 이재영 건설교통부 토지국장은 "개발이익이 발생한 시기와 지역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아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소송·체납 후유증 → 헌재 결정 → 폐지
노태우 정부 '공개념 3법' 그 후 운명은

1960년대 이후 땅값은 크게 네 차례 올랐다. 경제 개발에 따라 고도성장을 했던 64~71년과 중동 건설 붐으로 달러가 유입된 75~80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87~90년, 그리고 요즘이다.

땅값이 요동칠 때마다 역대 정부는 투기 억제 대책을 내놓았다. 땅값 급등에 가장 체계적으로 접근한 것은 세 번째 시기다. 노태우 대통령 정부는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실태조사를 해 이를 팔도록 강요했다. 이와 함께 89년 12월 땅 투기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택지소유상한법(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개발이익환수법(개발부담금제)▶토지초과이득세법 등 공개념 3법을 만들었다. 당시 김인호 경제기획원 차관보가 관계 부처 실무 입법 작업을 총괄했다.

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는 서울시와 광역시에서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 소유자에게 공시지가의 7%(주택 부속토지), 11%(나대지)의 세금을 부과한 제도다. 또 법인은 원칙적으로 택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국민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99년 4월 위헌 결정을 받았다.

개발부담금제는 택지 개발 사업.관광단지 조성 등 29개 개발 사업을 시행하는 사람에게 개발 이익의 25%에 해당하는 개발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아직 존속되고 있으나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2002년부터 비수도권, 2004년부터 수도권에서 부과를 중지한 상태다.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는 유휴 토지(놀리는 땅)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웃도는 지가상승분에 대해 30~50%의 세금을 물린 제도다. 땅값이 급등한 지역에 대해서는 1년 단위로 미리 과세한 후 3년 단위 정기 과세시 정산토록 했다.

이 제도는 94년 7월 땅값이 하락해 땅주인이 손해를 본 경우 등 일부 내용에 문제가 있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으며, 98년 12월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는 토초세가 미실현 이익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입법 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상의 조세 개념에 저촉되거나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일부 내용을 보완하면 위헌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택지소유상한제 역시 과도한 재산권 제한, 법 시행 이전부터 택지를 소유한 자에 대한 무차별적 적용 등을 문제 삼았으나 일부 전문가는 이 역시 기술적으로 보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정부는 부담금이나 세금 부과가 '무효'가 아닌 '취소' 사유에 해당된다며 반환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미 납부한 부담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반면 세금이나 부담금을 내지 않고 버틴 사람과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과를 취소했다. 공개념 제도가 다시 도입되더라도 소송과 체납 사태가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법 정신과 행정의 신뢰가 훼손돼 공개념 제도가 자리 잡기 쉽지 않은 이유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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