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전쟁이후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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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나의 전쟁이 끝난 뒤의 전후처리는 전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많은 전쟁들이 앞서 치른 전쟁의 뒤처리 잘못으로 일어났다.
포클랜드 전쟁도 예의일 수 없다. 원래 이 전쟁의 아이러니는 영국이 포클랜드군도를 격식을 차려서 내어놓기 위해서 무력으로 되찾으려는 데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영국은 문제의 군도를 되찾았다. 남은 문제는 이 군도의 영유권 문제를 어떻게 하는가 다.
만약 영국이 전쟁으로 탈환한 포클랜드군도를, 거기 사는 1천8백 명 영국계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구실로 계속 영국영토로 소유하려 들면 제2, 제3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말 것이다.
영국은 무력을 먼저 행사한 아르헨티나를 굴복시킴으로써 협상에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만족해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이 차지한 유리한 고지도 포클랜드군도반환에 관한 협상을 촉구한 65년의 유엔결의(2065호)를 묵살하는데 이용될 수는 없다.
유리한 입장은 협상테이블에서 행사할 일이지, 협상자체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지연시키는 무기가 되는 것을 세계여론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자들은 국내의 정정 불안으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제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을 바라는 인류의 염원을 배반한 것이다.
그들이 포트스탠리 함락을 목전에 두고 백기를 드는 굴욕을 당한 것은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인과응보라고 할 수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실업률 13%, 인플레이션 2백%라는 경제난까지 안고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항복을 통한 휴전은 정권교체까지 불가피할지 모른다. ·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전쟁, 반 식민지주의전쟁이라고 외쳐도 제3세계의 갈채를 받지 못하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권좌의 안전이 유지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이번 전쟁에서 큰 피해를 본 나라 중의 하나가 미국이다. 「레이건」행정부는 두개의 동맹국가끼리의 전쟁의 틈바구니라는 옹색한 처지에서 개전 초기에는 중재를 모색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의 확전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된 단계에서 영국지지를 선언하고, 사실상 영국을 물리적으로 지원하여 중재능력을 스스로 상실했다.
미국의 그런 처사는 유럽과 중남미의 미국의 우방들을 분열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중남미지역에서 미국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소련과 쿠바에 의한 「혁명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중남미지역에서 미국은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남미관계는 복원능력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싶다.
그런 점에서도 포클랜드전쟁이 소련의 직접적인 아르헨티나지원이 있기 전에 일단 휴전을 맞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방금 포연이 멎은 포클랜드 전쟁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나는 유사시의 동맹관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가다. 아르헨티나는 개전과 함께 리오 조약의 발동을 기대했지만 미주기구 (OAS) 회원국들은 거기까지는 따라가 주지 않았고 미국은 반대진영의 나라를 지지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체면 또는 원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다. 영국은 작은 나라의 공격을 받아 잃어버린 체면을 되찾기 위해서, 1천8백 명의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반대한다는 원칙을 위해서 쌍방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내는 확전 노선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포클랜드전쟁은 하나의 심각한 경고를 남겼다. 그것은 아무리 소규모의 제한된 전쟁이라도 현대전은 값비싸고 대량살상이 따르는 미사일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사일전쟁과 핵전쟁의 거리는 그렇게 먼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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