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어간 로제타 스톤 등 돌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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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의 보고 이집트가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의 자히 하와스 위원장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로 빼돌려진 유물을 반환받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대부분 식민지 시대에 이집트 정부의 허가없이 유출된 유물에 대한 우리의 반환 요청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하와스 위원장은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반환을 위한 중재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가 반환을 요구한 유물은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인 로제타 스톤 등 5점이다.

이 가운데 보스턴 미술박물관의 소장품 앙크하프를 제외한 4점은 모두 약탈당한 유물이라는 것이 이집트 측의 주장이다. 하와스 위원장은 "앙크하프에 대해서는 보상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가 가장 신경쓰는 유물은 단연 로제타 스톤이다. 725kg에 달하는 이 검은 바잘트석(石) 기념비는 이집트 고고학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파라오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과 고고학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리옹은 1822년 기념비에 새겨진 그리스어와 상형문자를 비교 분석해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해 냈다.

이집트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탈리아가 올해 막대한 경비를 부담해 가며 1700년 된 180t짜리 악숨 오벨리스크를 에티오피아에 반환한 것에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1937년 무솔리니가 약탈한 것이다.

AP통신은 14일 "그리스 등 일부 국가가 추진 중인 '문화재 반환 전쟁'에 이집트도 합류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한 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반환 요청이 쇄도할 것이기 때문에 유물 보유국이 유물을 돌려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이집트는 2003년 이집트 전시를 위해 로제타 스톤의 대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매년 5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대영박물관 측의 거절 사유였다.

대영박물관의 한나 볼턴 대변인은 1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의 유수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전 인류에 계속 제공할 것"이라며 로제타 스톤을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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