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던 일본 지자체들도 돌아서 "채택률 10%될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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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만든 후소샤(扶桑社)출판사의 역사.공민교과서가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선 처음 채택됐다. 일 도치기현 오타와라(大田原)시 교육위원회는 13일 비공개회의를 열고 후소샤판 역사.공민 교과서를 교육위원 전원일치(5명 중 1명 결석)로 공식 채택했다. 오타와라시와 오는 10월 오타와라시에 합병되는 인근 2개 지역의 총 12개 중학교 학생 2300명이 내년 신학기부터 새역모 교과서로 일본 역사와 공민을 배우게 된다. 오누마 류(小沼隆) 시 교육위원장은 "학생들이 후소샤 교과서로 국가에 대한 자랑과 애정을 배우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후소샤 교과서는 일제 침략을 미화하고 종군 위안부와 조선인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등 과거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1년 교과서 채택 당시에는 특수학교와 일부 사립고 등 19개 학교만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 전국적인 채택률은 0.039%에 그쳤다.

◆ 채택 배경=도치기현은 후소샤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가 일찍이 '위험지역'으로 분류한 곳이다. 2001년에도 도치기현 내 일부 지역에선 채택협의회가 후소샤 교과서를 추천했으나 반대 여론에 밀린 교육위원회가 다른 교과서를 채택한 적이 있다.

후소샤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은 "도치기현은 교직원조합의 우익 성향이 높은 반면 시민단체 조직은 가장 취약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도치기현 내 다른 교육위원회도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 파장과 전망=일본 47개 광역자치단체의 총 583개 지구별 교육위원회는 다음달까지 교과서를 채택하게 돼 있다. 대부분 지역에선 이달 말부터 다음달 중순에 채택한다. 민단 청년회의 김종수 기획사업부장은 "새역모가 오타와라시의 채택을 선전 도구로 활용,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던 다른 지자체의 교육위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새역모 부회장 출신이 교육위원인 사이타마(埼玉)현,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이 여러 건 발생했던 니가타(新潟)현과 후쿠이(福井)현,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 등에선 후소샤가 유리한 분위기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새역모가 목표 채택률 10%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한국 정부=이규형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새역모 교과서 채택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 대변인은 "정부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 채택이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과거 역사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심각하게 우려해 왔다"며 "이는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정립해 나가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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