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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농민운동가 출신 박홍수 농림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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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민으로부터 가장 욕을 많이 먹는 농림부 장관이 되겠다."

박홍수(50.사진) 농림부 장관은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지난 1월 취임 이후 많은 농민이 도와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다시는 힘들고 어렵다는 말 쓰지 말자'고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26세부터 25년간 돼지 치고 농사를 지은 농사꾼 출신 장관의 첫마디로는 의외였다.

그는 고향인 경남 남해의 장포마을에서 농민후계자로 선정됐다. 농민후계자 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에 가입해 농민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 한농연 회장 때는 농가부채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민운동 최초로 고속도로 점거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많은 농민이 큰 기대를 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박 장관은 "농민은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앞으로 농가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며 "농민도 스스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쌀을 만들 자신이 있으니까 이런 부분만 도와 달라'고 하면 정부가 나설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장관은 새만금 간척지에 대해서도 "20~30년 후를 내다보고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의외다. 농민운동가 시절의 주장과 많이 다른데.

"올 1월 1일 한 일이 빚 때문에 자살한 후배 농민의 빈소를 찾은 것이다. 이게 농촌의 현실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와줘도 이런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본인이 열심히 해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정부도 도울 수 있다. 말기 암 환자도 살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약의 효과가 나타난다.

마을 이장이 도지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직책에 맞는 전문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 농민운동을 할 때는 철저했다. 하지만 농림부 행정을 맡았으면 균형잡힌 정책을 펴야 한다. 난 농민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외국쌀 시판이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올해 시중에서 판매되는 외국쌀 물량은 2만2500t이다. 연 소비량의 0.5%로 우리 국민의 하루 식사 분이지만 심리적 충격은 클 것 같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수입 쌀을 국가무역 형태로 관리하기 때문에 시중에 팔 때도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이다. 수입쌀을 불법으로 유통하면 강력히 단속해 처벌할 것이다."

-쌀이 남아도는데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꼭 써야 하나.

"새만금 간척지를 활용할 시점은 20~30년 후다. 현재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0% 정도다. 앞으로도 중국이나 미국 등 외국에서 식량을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남북 통일도 내다봐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식량문제 해결 없이 통일은 의미 없다. 쌀을 통일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 때문에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

-북한의 농업생산성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한다는데.

"남북이 다툼없이 활발히 움직이는 분야가 농업이다. 쌀도 보내고 비료도 보내준다. 현재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지원하는데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농림부가 농업 분야의 남북협력에 관한 큰 틀을 체계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남북경협을 할 때 농업부문 담당자 간의 만남을 추진하려고 한다."

-농가부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농지제도를 개선해 농지은행이 빚이 많은 농민으로부터 농지를 살 계획이다. 농민은 농지를 판 돈으로 빚을 갚고, 농지은행에서 그 땅을 그대로 임대한다. 농민이 열심히 해 돈을 벌면 다시 그 농지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는 소비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대처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게 입증돼야 수입 재개 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장관으로서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정부와 농업인 간의 신뢰관계 구축이다. 그동안 농민은 정부를 믿지 않았다. 무너진 신뢰관계를 되찾도록 노력하겠다."

부인과 3녀1남의 자녀를 고향에 두고 서울의 오피스텔에서 혼자 생활하는 그는 매일 오전 8시면 출근한다. 농민이 일어나 활동하는 시간에 자신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의지다.

또 취임 이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주말마다 열 군데씩 농촌에 다니며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농촌 정책을 펴기 위해서라고 한다.

글=김종윤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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