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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원의 여 가장 일가|서울 성북구 정릉3동 영락모자원 김영란씨 세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처음 전쟁미망인 수용>
미망인 김영난씨(421), 아들 허정기군(14·중학2년), 딸말 허윤정양(11·국민교 5년) 세 가족은 3년 전부터 영락모자원(서울 성북구 정릉3동)에서 살고 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래도 인플레를 따라 잡을 자신이 없었어요. 6개월마다 올려 주어야하는 방 전세값 때문에 우선 질려 버리고 맙니다.』
74년, 사업에 실패하고 병까지 얻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김씨에게 남은 것은 1남1녀의 자녀와 조그마한 전세방하나 뿐이었다.
고향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김씨여서 당시만 해도 한창 성행했던 국민학교생 과외로 생활을 근근히 꾸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78년 전후해서 부동산 투기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김씨는 반년에 한번씩 오르는 전세값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전세방에서 쫓겨날 위기를 몇 번씩이나 넘겼으나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될 직전 모자원으로 오게 되었다는 김씨.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자신이 모자원 신세를 지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적어도 3년은 방 값으로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긴 했읍니다만 처음엔 내 설움에 겨워 울고, 또 모자원에 얼른 정이 들지 않아 울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막상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납니다.』
미망인으로 14세 이하의 자녀 2명 이상을 키우고 있는 영세민에게 입주권을 주고 있는 모자원의 입주시한은 3년.
그 3년 동안 숙식과 피복비 지원을 받으며 혼자 힘으로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여성가장들은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모아야 한다.

<자녀 두고는 재혼 못해>
비스듬한 언덕을 깎아 길다랗게 숙사를 지은 모자원에서 한 가구가 차지하는 넓이는 방과 다락·부엌을 합해 5평. 방 앞에는 손바닥만한 채소밭을 두어 여름에 채소를 가꾸어 먹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화장실과 목욕탕이 있고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넓은 마당도 마련돼 있다.
6·25직후 전쟁 미망인을 수용하면서 시작된 영락모자원의 현재 식구는 28가구에 1백 여명. 정부와 사회단체·교회 등의 지원금으로 식비는 물론 연료비·김장값·피복비 등을 지급 받는다. 수용된 미망인들은 대부분이 파출부·청소부로 일하며 자립할 수 있는 돈을 저축하고 있다.
김씨의 경우 남부 부녀보호소에 일자리를 얻고 있어 다른 가구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가정을 꾸미고 있다.
파출부나 청소부라면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 밤10시는 되어야 귀가하게 되지만 김씨는 아침7시30분 출근, 저녁 7시30분 퇴근시간이 정확해 자녀들에게 신경 써줄 시간이 많다.
김씨의 수입은 11만원의 월급과 연4백%의 보너스가 전부다. 그러나 꼬박꼬박 가계부를 적으며 그동안 3백 만원의 저축을 했다. 자녀들도 비교적 양순한 편이어서 학교에서 성적도 좋으며 모범 어린이상 등을 받기도 한다.
그동안 재혼할 기회나 유혹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김씨는 자녀를 두고 개가할 마음을 좀체 가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먹을 밥을 짓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준 후 김씨는 출근한다.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이지만 자녀들 생각을 하면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그러나 일과를 끝내고 귀가할 때면 몸이 솜처럼 풀어지고 만다.
그나마도 김씨에게는 저녁에 세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앉아 식사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월급날 등 어쩌다 특식을 마련하는 날이면 김씨의 퇴근길 발걸음은 빨라지고 저녁상 위에 놓인 음식이 아이들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는 것을 볼 때는 속으로 울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한창 커 가는 나이에 낮 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하는 측은한 생각 때문이다.
김씨 일가가 모자원에 들어온 것은 79년11월16일. 3년이 되는 오는 연말에는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 모자원의 모든 가구가 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미망인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의식주의 기본적인 문제가 최저선이나마 해결되며 정신적·물질적인 보호를 받는 속에서 마치 사회로 그냥 내던져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3백 만원을 겨우 저축>
3년 동안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3백 만원을 마련하는 사람은 드물다. 겨우 전세방 하나를 얻어 새살림을 마련하면 이 목돈도 물거품처럼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생계는 모자원에 들어오기 이전이나 이후 모두가 막연하기만 한 것이다.
『3년전 이곳에 들어 올 때는 나이가 젊어서였던지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제 몸도 가끔 아프고 하니, 영 자신이 없어집니다.』
자녀들의 교육이 겨우 시작된 단계에서 스스로 용기를 잃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어쩐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는 김씨의 푸념이다.
자녀들에겐 1주일에 1천원씩의 용돈을 준다. 지난 8일 어머니날 자녀들은 이 용돈을 모아 얼굴에 바르는 크림과 카네이션 한송이, 그리고 박카스 두 병을 선물로 주었다. 선물의 뜻을 읽은 김씨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자녀들도 울먹였다고 한다.
내년 초에는 모자원 부근에 방을 얻어 그동안 정든 모자원 식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용기와 격려를 받겠다고 김씨는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김징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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