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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진화론도 수난… 거세진 미 보수 복음주의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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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공립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배척하며 학교와 교육위원회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화론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이론 중 하나에 불과하며, 진화론을 가르치려면 창조론도 같이 가르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톨릭에서도 최근 이들과 입장을 같이 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미국 내 기독교 우파들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 진화론 교육을 막아라=미국 과학교육센터의 유진 스콧 소장은 지난 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최근 6개월만큼 심한 적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스콧 소장은 올 들어 미국 50개 주 가운데 31개 주에서 진화론 수업을 줄여야 한다든지 창조론도 같이 교육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밝혔다.

복음주의자들의 등쌀에 펜실베이니아.조지아 등 일부 주에서는 이미 진화론 수업을 줄이거나 교육을 하더라도 건성으로 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켄자스주 교육위원회는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비판할 수 있다는 선까지 허용하고 있다. 조지아주 콥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올해 초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진화론은 생물의 기원에 관한, 사실이 아닌 하나의 이론"이라는 구절을 삽입했다가 연방법원으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고서야 뺐다.

◆ 창조론 대신 지적 설계론=미 연방대법원은 1987년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과학적 이론으로 가르치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주 도버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요즘 이 판결에 도전하고 있다. 도버 교육위는 창조론 대신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들고 나왔다. 지적 설계론이란 생물계는 너무나 복잡해서 진화론만으론 설명할 수 없으며, 절대자에 의해 계획적으로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창조론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이들은 하느님이나 종교와 관련짓지 않는다. 그래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버 교육위원회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은 대법원의 1987년 판결이 헌법상 국가와 종교의 분리 조항에 근거한 만큼 지적 설계론은 이 판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켄자스주와 위스콘신주의 일부 교육위원회도 이와 유사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 과학교사들은 반발=테네시주 리카운티의 과학 교사들은 지난주 "창조론이나 이와 유사한 지적 설계론 지지자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계속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 교사협회의 연례 세미나에서도 진화론 교육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교사들은 대부분 보수 종교계가 진화론의 과학적 근거를 부인하며 과학 교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뉴욕 타임스도 교사들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타임스는 공공 교육기관이 확립된 이론으로 인정받은 진화론을 무시하거나 대안 이론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기관인 국립과학원도 진화론이 현존하는 이론 가운데 생명의 기원에 관한 가장 유용한 이론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지키고 있다.

◆ 미국 사회 보수화의 한 단면=매사추세츠 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제니스 어바인은 "보수 기독교 우파들의 활동은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더욱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의 표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들은 최근 가톨릭의 움직임에 더욱 고무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측근인 크리스토프 쇤번 빈 대주교는 지난 9일 뉴욕 타임스를 통해 "진화론이 가톨릭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한편 지난 4월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1996년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며 "진화론은 단순한 가설 이상"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 기독교 복음주의는=기독교 복음주의란 성서에 밝혀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시하는 신앙의 입장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출산과 예수의 죽음.부활을 신봉한다. 복음주의는 특히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정치적.종교적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다. 조지 W 부시의 대통령 재선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거대한 보수주의의 흐름 밑바닥에는 복음주의의 부활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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