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파워블로거야" 할인 구입 미끼로 수십억 사기 친 일당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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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파워블로거 행세를 하며 물건을 싸게 구입해주겠다고 속이고 수십억을 챙긴 사기 일당이 기소됐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파워블로거라 물건을 싸게 샀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수십억대 사기로까지 번졌다.

서울 동부지방검찰청 형사 4부(부장검사 전승수)는 유명 포털사이트 파워블로거를 사칭해 물건을 싸게 구입하도록 해주겠다고 속이고 42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박모(23ㆍ여)씨와 장모(38ㆍ여)씨를 구속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두 사람은 고종사촌 관계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7월께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소형승용차 구입해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특별한 직업이 없던 박씨가 무슨 돈으로 차를 샀는지 걱정했고, 박씨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파워블로거여서 할인된 금액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거짓말을 믿은 박씨 어머니가 주변에 자랑을 하면서 일이 커졌다. “물건을 싸게 구입하고 싶다”는 친인척들의 부탁이 이어진 것이다. 박씨는 어머니의 체면 때문에 처음엔 자신이 손해를 봐 가며 물건을 대신 구입해 줬고, 부족한 돈은 신용대출이나 현금서비스로 메꿨다.

그러나 박씨의 이런 ‘돌려막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소문이 퍼지고 지인들의 부탁이 이어지면서 박씨가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결국 박씨는 지인들의 명품 구입을 부탁한 사촌언니 장씨에게 사실을 털어 놨다. 그러나 이를 들은 장씨는 박씨에게 오히려 더 적극적인 범행을 제안했고, 자신이 나서 피해자들을 모집했다.

검찰 조사 결과 장씨는 미용실 원장 등을 통해 부유층 주부들을 소개받고, 박씨를 통하면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다고 꼬드겼다. 피해자 중에는 부유층 주부 뿐 아니라 현역 프로야구 선수와 중견기업 회장 부인 등도 포함됐다. 또 명품 뿐 아니라 수입자동차, 고급주택, 골프회원권, 골드바 등도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이 가능하다며 범행 규모를 키웠다.

박씨 등은 이런 수법으로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지난 8월 4일까지 총 21명으로부터 70여회에 걸쳐 42억원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박씨의 블로그엔 포스팅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접속자도 거의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의 거짓말로 시작된 사건은 부유층과 어울리려는 장씨의 허영심과 명품에 대한 피해자들의 욕심까지 결합되며 거액의 사기 사건으로 진화했다”며 “우리 사회의 그릇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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