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의 포클랜드 전 보도방향|영국정치무대로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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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런던=장두성 특파원】포클랜드사태를 둘러싸고 영국정부와 BBC방송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BBC의 방송내용이 영국 측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고 있다는 「대처」수상의 의회발언으로 촉발된 이 논쟁은 BBC측이『애국심에 관한 한 우리는 현정부로부터 배울게 없다』고 정면으로 반발함으로써 불이 붙었다.
거기다가 여당의원과 보수당 계 신문들이 「대처」수상 편에 서고 야당의원과 노동당 계 신문들이 BBC편에 서서 일제히 포문을 염으로써 전시에 있어서의 언론의 역할에 관한 이 논쟁은 정치무대로 확대되고 있다.
「대처」여사는 BBC방송내용 중 못마땅한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았지만 여당의원들의 발언과 여당계 신문들의 논조를 통해 지적된 비판점은 ▲BBC가 침략자인 아르헨티나와 영국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고 ▲아르헨티나 발 보도를 너무 크게 취급하며 ▲영국 내 반전경향을 과장 보도한다는 점 등이다.
단편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비판점을 살펴보면 BBC는 뉴스보도 때마다 절대로 『우리 함대, 우리 군대…』등의 표현을 쓰지 않고 『영국함대, 영국군대…』라고 보도하며 『영국 측은…』라고 주장하고 『아르헨티나 측은…』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양쪽발표를 다같이 거리를 두고 보도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의 「파노라마」라는 뉴스해설 프로그램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보수당의원 2명과 노동당의원 2명을 등장시키고 정부입장을 대변하는 논객은 한사람만 등장시켜 마치 반전무드가 다수인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BBC가 항구를 떠나는 영국병력수송선의 모습을 보도하면서 그 배에는 수백 개의 관이 실려 있다고 지적한 것도 말썽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BBC측은 ①객관적 보도입장을 살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청취자들에게 의미상의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우리」라는 표현보다「영국」이란 표현을 쓴다 ②반전논자를 주로 등장시킨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전에 이미 「대처」수상과의 단독회견으로 일관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③아르헨티나 보도자료를 많이 쓴 것은 영국 측의 발표가 늦거나 발표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BBC의 전무인「프랜시스」씨는 마드리드에서 개최중인 IPI(국제신문편집인협회)총회에서 포클랜드에서 일어나는 일 중 95%는 영국 정부가 발표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르헨티나 순 양함 벨그라노 호가 격침됐을 때 이 사실은 아르헨티나 측이 먼저 발표했고 영국구축함 셰필드 호가 격침되었을 때는 85분 늦게 영국 측이 발표했다.
영국함대에는 BBC 카메라맨들이 타고 있지만 영국해군이 필름후송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뉴스필름을 본국에 보낼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쪽 필름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명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계 신문들은 BBC의 행동을 이적행위로 몰아 붙이면서『방화범과 소방대원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격』이라고 비난했고 신문독자들 중엔 『BBC는 도대체 어느 편이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노동당수「마이클·푸트」의원은 『수상이 BBC를 공박하기 전에 전쟁무드를 고취시키려 광분하는 보수당 계 신문들을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그들의 전반적 보도 태도에 대해 의연하다. 「프랜시스」 전무는 『우리는 애국심을 팔고 사는 업체가 아니다. 영국수병의 .미망인이나 아르헨티나군인의 미망인이나 다를 게 없다』고 말하고 위기 속에서 BBC가 국민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은 군인들과 근심 어린 군인가족들에게 가장 신빙성 있는 보도를 해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BBC측의 가장 강력한 자기변호자료는 아르헨티나가 BBC의 대 라틴아메리카 방송을 철저히 전파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에즈사태나 북 아일랜드사태처럼 위기가 올 때마다 있었던 BBC와 정부사이의 마찰은 이번에도 논쟁이상의 결과는 없이 끝날 전망이다. 정부는 원한다면 BBC에 제재를 가할 법적 수단을 갖고 있다. 내무장관은 행정명령으로 BBC의 관선이사를 해임할 수 있으며 체신부장관은 방송면허를 취소하거나 특정프로의 방송을 금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런 권한을 발동한 적이 없다. 그럴 경우 일어날 여론의 반발과 언젠가 야당이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정치적 보복가능성 등 이 BBC를 섣불리 굴복시킬 수 없게 만드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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