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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닝 쇼크에도 주가 뛰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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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년부터 주주환원을 고려하고 있다. 그 결과는 4분기 실적발표 때 이야기하겠다. (이명진 삼성전자 IR팀장)”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 이날 발표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확정 실적)은 4조600억원이었다. 지난달 7일 발표한 잠정치(4조1000억원)보다 400억원이 줄었다. 확정 실적 발표 때만 해도 금융시장에는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IR팀장의 이 말 한마디에 외국인을 비롯한 주요 투자자는 삼성전자 주식을 앞다퉈 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 발표 전날(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무려 14%나 급등했다. 이 기간 시가총액도 22조원 불었다. 31일 삼성전자 주가 상승폭(5.33%)은 4개월여 만에 가장 컸다.

 한 주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는 9월18일 한국전력 부지 인수 발표 후 너무 비싸게 샀다는 시장의 평가 때문에 주가가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9월17일 21만8000원이었던 주가는 한달 후 16만2000원으로 무려 25.7%나 떨어졌다. 그러나 10월23일 실적 발표 때 반전이 일어났다.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줄었음에도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내년부터 중간배당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주가는 하루 만에 5.8% 반등했다. 이 회사 주가는 최근 17만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배당에 인색했던 주요 상장사가 잇따라 배당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배당 계획을 발표한 기업의 주가는 큰 폭으로 뛰는 반면 좋은 실적에도 주주 환원 계획을 내놓지 않은 기업의 주가는 오히려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가 배당계획을 내놓은 지난달 23일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의 실적(매출 4조3121억원, 영업이익 1조3012억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SK하이닉스가 “배당에 대해서는 결정한 것이 없다”고 밝히자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위원은 “최근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저금리 장기화로 배당처럼 안정적인 수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국내 상장사의 배당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이어서 외국계 투자가가 국내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낮은 배당률은 국내 상장사가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 이유로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간부는 “한국은 배당률이 낮은 편이어서 비슷한 규모의 나라보다 주식을 적게 담는 편”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초·중반 국내기업의 현금배당 성향(현금배당/당기순익)은 16~19% 였으나 2009년 이후 13~16%로 낮아졌다.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액/주가)도 2004년 2.3%에서 계속 하락해 지난해 0.8%에 불과했다.

 최근 실적이 부진한 국내 기업이 주가 부양책의 하나로 배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배당성향은 앞으로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국내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해둔 현금이 계속 불어나고 있어 배당 압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가운데 60% 가량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국내 10대 그룹이 보유한 현금은 125조41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나 증가했다. 박 연구원은 “2000년대 일본 기업도 저성장 구도가 굳어지면서 이를 배당하지 않고 투자재원으로 비축해놓기에 바빴다”며 “하지만 2007년부터 배당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기간 동안 투자자의 중심이 단기 성향의 개인에서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배당이라는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김창규·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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