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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북 권력자 ICC 회부, 중국이 거부권 행사 안 할 수도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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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06면

북한의 인권 유린에 국제사회가 더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 지난달 29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약 1시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춘식 기자

데이비드 올턴(David Alton·63) 영국 상원의원은 ‘탈북자의 대부’로 통한다. 지난해 런던에서 한국 정부 주최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회의에서 탈북자의 증언을 듣던 그가 눈물을 보였다. 영국 상원의 북한위원회 위원장과 영국·북한 의원협회 회장인 그는 영국 의회에서 탈북자들이 처절한 경험담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었다. 그는 수십 명의 탈북자들을 만나 기록을 수집해왔고, 2003년부터 네 차례 북한에 다녀왔다.

‘탈북자의 대부’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

지난달 29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에 온 그는 숭실공생복지재단 주최의 고아 인권 관련 포럼에 참석한 데 이어 탈북자와 탈북자 단체를 잇따라 면담했다. 그를 만나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결의안 추진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움직임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그는 “ICC 제소에 대한 중국의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생각에서 벗어나자”고 말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북한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이 평양에 대사관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우선 현재의 북한 인권 상황을 어떻게 보나.
“마이클 커비(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한다. 커비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참혹한 일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이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동안 많은 탈북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왔다. 2주 전 한 탈북 여성은 영국 의회에서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동물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나는 탈북자들의 말을 믿는다. 그들을 만나보면 북한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단지 북한 정권에 반대할 뿐이다.”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어떤 일부터 해야 하나.
“이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된다. 유엔 결의안 채택이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는 유용한 하나의 방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 뉘른베르크에 나치 전범재판소를 만들었던 것처럼 북한에서의 반인륜 범죄에 대한 별도의 재판소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 권력자들을 ICC에 회부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필요한데, 중국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 아닌가.
“중국이 응당 비토할 것이라는 전제는 잘못됐다. 중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최근 런던에서 만난 중국 관리들은 중국에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간 탈북 여성의 아이가 강제로 낙태된 것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비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을 기정사실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유엔 보고관, 가능하면 방북해야
-북한이 유엔의 결의안 채택과 ICC 회부 움직임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격적인 언어는 상황을 바꾸는 데 효력을 갖지 못한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협박이나 위협이 현실을 모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 정권이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정권의 파멸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이 유럽연합(EU) 관계자나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 있나.
“북한이 방문을 허용한다면 당연히 가야 한다. 그리고 강제수용소 등 현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과거처럼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곳만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봐야 한다.”

-북한 문제는 중국이 키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국은 자체 인권 문제 때문에 북한의 인권에 대해 얘기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중국도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나.
“중국이 경제적 번영의 길로 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인권에 대한 요구도 분출하고 있다. 한번 밖으로 나온 ‘지니’(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나온 거인)를 다시 넣는 것이 어렵듯이 이러한 요구를 꺾을 수는 없다. 수십 년 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을 비교해봐도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관리들을 만나보면 변화가 느껴지나.
“중국은 경제적 번영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중국에 한국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 한국을 선택하겠다고 답하는 이가 많다. 북한도 이러한 상황을 매우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건설적 개입’이 절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바마 정부에 실망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선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뭔가를 시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별 변화가 없다. 시리아 등의 중동 문제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사태에 집중하느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북한에 대한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맺으며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정부가 북한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판단을 바꾼 것은 아니다. 옛소련 시절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 대사관은 반정부 인사의 도피처가 됐다. 대사관 그 자체가 자유와 투쟁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비공식 채널로 북한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사관 개설이나 외교관계 수립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정권에 대한 승인이라고 여길 필요가 없다.”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 문제로 한국에서 내부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보도를 봐서 알고 있다. 정부 대 시민이 아닌 시민 간의 이견 표출 아닌가. 나는 이런 일이 건강한 사회의 증거라고 여긴다.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이런 일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탈북자 면담 계기로 북한에 관심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때 3명의 권력 실세를 보냈다. 고위급 대화가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긍정적 사인이라고 보나.
“대화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상황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경우라도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간의 ‘핫라인’ 단절은 위험하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을 때 북한 정권 차원에서 결정한 일인지, 아니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우발적 도발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북한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 또는 국제사회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커비의 제안이 실행돼야 한다. 찬성하는 나라들은 반대 국가를 설득해야 한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되면 내년 유엔 총회에서 진전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해에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북한 비판에 앞장서면서도 동시에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모순되지 않나.
“2000년 영국과 북한의 외교관계 수립 뒤 런던으로 온 이용호 초대 주영국 북한대사와 그의 후임자였던 자성남 대사와의 관계가 좋았다. 그들과 자주 얘기를 나눴다. 나는 북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늘 말했다. 북한 학생을 영국 대학으로 초청하는 일과 북한에 대한 의료품 공급 등 인도적 지원도 도왔다. 지금 대사와의 관계는 좀 껄끄럽다. 그는 인권 문제 제기에 훨씬 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2003년 동료인 캐럴라인 콕스 상원의원이 탈북자를 함께 만나자고 제의했다. 내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하자 콕스 의원이 ‘다들 마찬가지다. 당신보다 더 아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탈북자를 만나 사연을 듣고 상원의 토론 안건으로 북한 문제를 올렸다. 내가 의회에서 말하는 장면이 BBC를 통해 보도됐고, 다음 날 이용호 대사가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그래서 이 대사를 만났더니 북한 방문을 제의했다. 북한의 비용 지원을 받지 않고, 북한에서 인권 문제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걸고 방북했다. 그것이 북한을 상대하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데이비드 올턴(63) 영국 상원의원은 5선의 하원의원 출신이다. 1979년 리버풀 지역에서 28세에 당선돼 영국의 최연소 하원의원 기록을 깼다. 그는 영국의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이 아닌 자유당(현재는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이전의 시의원 시절부터 아동 인권 보호와 낙태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의원 시절에는 임신 초기가 아니면 낙태 시술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주블리 액션’이라는 아동 보호 자선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97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하원에서 물러났다. 직후 존 메이저 당시 총리의 천거로 종신 상원의원이 됐다. 동시에 남작 작위도 받았다. 현재는 당적을 버려 무소속이다. 2008년 영국 올림픽협회가 베이징 올림픽 참가 선수들에게 ‘중국에서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하자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3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네 차례 방문했다. 최태복 노동당 비서 등 북한의 권력 실세들을 만나 정치범 수용소 철폐 등을 요구해왔다. 지난해에 『다리를 놓기:북한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책을 냈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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