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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1)|<제77화>사각의 혈전 60년(9)|강부영의 멋|김준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이미 말했듯이 서강일의 등장과 활약은 한국 프로복싱사에 새 시대를 여는 분수령이었다. 한국복싱은 잔잔한 호수로부터 벗어나 격랑의 바다(국제무대)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나 서강일은 선두주자였기에 꽂을 피우지 못한 지독한 불운의 복서였다. 말하자면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어쨌든 격동의 시대엔 군웅이 할거하게 마련. 서강일 못지 않게 대중의 갈채를 모은 스타들이 속출했다.
그 중 특기할만한 선수가 강부영이다. 강부영은 서강일 보다 상위체급인 라이트급이었다.
서강일이 스피드와 테크닉에서 최고라 한다면 강부영은 멋의 대명사다.
강부영은 스포츠 중 가장 야성적이고 살벌한 복싱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세계복싱사상 희귀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복싱스타일은 마치 울굿불굿 다채롭고도 오묘하게 꾸며 진한아름의 꽃다발을 연장케 했다.
말하자면 치고 받는 싸움을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할 수가 없었다.
복싱팬들의 호감을 사는 건 당연했다. 흔히 주먹장이들이 폼을 재며 멋을 부리듯이 강부영의 복싱이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보디웍을 남발하는 것과 같이 불필요한 헛동작으로 공허하게 폼만 재는 치졸함은 없고 아기자기한 테크닉, 예리한 센스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갈채를 받은 것이다.
모름지기 프로 스포츠가 승부의 결과 이상으로 『관중들에게 흥미를 보여 주는』쇼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볼 때 강궁영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프르페셔널이었다.
최근에 쿵후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진작 강부영이 복싱영화에 등장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추어생활을 잠시 한 후 60년도에 프로로 전향한 강당영은 그토록 인기를 끈데 비해 전적은 화려하지 않은 편이었다. 64년 은퇴 때까지 끝내 국내타이틀 조차 획득하지 못했다. 라이트급 한국1위가 절정이었다. 당시의 챔피언은 강한수(현재 서대문에 있는 청우권투회관장)다.
그리나 강부영은 라이트급 세계랭킹 8위까지 올라 국제적 철권의 대열에 끼였다.
한편 강부영은 해방 후 오랫동안 가로막혔던 한일간의 장벽을 깨고 한국프로복서로는 맨 처음 일본에 원정간 선수였다.
강부영이 일본으로 간 것은 프로전향 직후인 60년. 따라서 4·19로 막 배일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호기를 재 빨리 포착한 셈이었다.
강부영의 첫 매니저였던 이윤영씨(현 KBC사무국 계시원)가 도오꾜에서 복싱관 회장으로 있는 「유끼·도시오」씨와 연락이 닿은 것이 계기가 됐다. 「유끼·도시오」씨는 재일 교포로 한국 명은 강원근이며 이윤영씨와 동향(함흥)인 절친한 사이.
「유끼·도시오」씨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가 약4개월 머물면서 강부영은 수차례의 경기를 가졌고 프로의 훈련을 쌓기도 했다.
일본 생활은 강부영에게 큰 재산이었다. 귀국하자마자 국내 복싱팬들에게 신인 강부영의 이채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프로복싱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강부영이 복서로서 대성하지 못한 것은 한가지 치명적인 결함 때문이었다.
편치력·스피드·센스·기술 등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추고서도, 못지 않게 중요한 강인한 근성이 모자란 것이다. 이 점이 서강일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강부영과 함께 등장한 선수로 김기수 김득봉이 있다.
둘다 오랜 아마추어 경력으로 정통파 적인 복싱을 하는 중량급이며 나란히 60년도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후 프로로 전향했다.
그런데 두 선수가 대조적이었다. 당초 올림픽 때도 김득봉이 더 기대주였고 프로전향직후에도 미남에 날씬하며 경쾌한 아웃복싱을 하는 김득봉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김득봉은 또 체중이 적은데도 김기수와 한번 대전, 무승부를 이루기도 했다. 그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그러나 김기수가 66년 세계정상까지 오른 반면, 김득봉은 소문도 없이 조락하고 말았다.
김기수에게 미들급 동양왕좌를 물려준 백전노장의 하드펀처 강세철이 34세 때인 61년 은퇴를 할 때 주니어미들급의 이색복서 이안사노가 데뷔하더니 3년만에 동양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미들급의 터프가이 최성갑 이금택이 이즈음 등장했고 67년엔 허버트강(페더 1라이트급) 김현리원석(밴텀급)등 링의 인기스타가 속출, 프로복싱계는 급속도로 활기를 더해갔다. <계속>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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