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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적극 참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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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해결하자고 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은 실망스럽다. 문 위원장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회에서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여 해결될 일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련 당사자와 미래를 내다보는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제1야당 대표가 독자적인 야당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해결이란 어정쩡한 제안을 들고나온 건 납득하기 어렵다. 자칫 이 문제에 대해 몸을 사리고 있거나 소극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는 누구보다 문 위원장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에도 공무원연금 개혁이 시도됐지만 공무원들의 반발과 조직적 저항에 부닥쳐 좌절됐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공무원연금 보험료(월 급여의 7.5%→9%)를 올리려다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연금 지급액 부족분을 정부가 세금에서 메워주기로 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 개혁을 하려다 되레 개악(改惡)이 되고 말았다. 지금 매년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공무원 연금 지급에 들어가게 된 단초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땐 연금 지급 시기를 65세로 늦추는 안을 추진했지만 공무원들의 저항으로 이 역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야당은 과거 뼈아픈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만큼 모처럼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이때를 놓쳐선 안 될 것이다. 과거 경험을 거울 삼아 보다 성숙되고 치밀한 개혁안을 내놓는 게 순리다. 그래야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공무원연금 재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선 33조원의 국민 혈세를 연금 재원 부족분을 메우는 데 써야 할 판이다.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 토론의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가 합의기구에서 처리해야 할 성질인가도 따져볼 문제다. 지난달 열려던 한국연금학회의 토론회는 공무원 노조원들이 구호와 욕설을 퍼부으며 저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토론회 하나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현실에서 합의기구를 통한 온전한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지 묻고 싶다. 굳이 합의기구가 아니더라도 공무원의 입장과 의견을 수렴할 장치는 국회에 얼마든지 있다.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열어 효율적이고 질서 있게 의견을 청취하면 된다. 문 위원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 겠다”고 다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가 그 시금석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