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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맞은 이해찬 총리] 소신 앞세운 실세 … 독설·오만 논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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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이해찬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집무실 창가에서 비 내리는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

'실세 총리' '책임 총리'로 불리는 이해찬 총리가 30일로 취임 1년을 맞았다.

지난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이 분권형 국정운영체제를 도입한 뒤 이 총리는 일상적인 국정운영을 도맡아 왔다.

그는 매주 열리는 국무회의 대부분을 대통령 대신 주재하고, 주요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이 참석하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책임장관회의 등을 통해 주요 정책 사안의 방향을 잡아 왔다. 이 총리가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총리실 조직도 함께 커졌다. 300명대(파견직원 포함)이던 총리실 인원이 600명 선으로 늘었고, 국무조정실에는 복수차관제를 도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총리가 추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정부 혁신 등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처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독설로 인해 여권 내에서조차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이 총리는 29일 가진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행정중심복합 도시 건설, 미군기지 이전 등이 보람 있었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당으로 돌아가는 문제는 대통령 나름대로 판단이 있을 것"이라며 "당분간은 당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1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일을 추진했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요즘도 일주일에 5~6번은 청와대에 들어간다"며 노 대통령과의 갈등설을 부인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법무.환경 장관 인사와 관련, "대통령과 여러 차례 논의했고 두 사람 모두 적임자를 임명했다고 생각한다"며 "최상의 인사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리의 추진력에 대해 일선 부처 공무원들은 비교적 점수를 후하게 준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이 총리가 들어온 뒤 부처 간에 얽힌 사안은 거의 즉각 해결해 준다"며 "청와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국정운영 성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경제난과 최근 잇따라 나온 부동산값 폭등 대책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 김광웅 행정대학원 교수는 "총리가 대통령과 의사소통이 잘 되고 정책의 중심을 잡는 것은 나아졌지만 실제 국정운영의 성과나 내용은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총리는 독설에 가까운 거침없는 발언으로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곤 "동아와 조선은 역사의 반역자다. 동아.조선은 내 손아귀에 있다. 까불지 말라"는 막말을 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고도 했다. 이어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도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받은 정당 아니냐"고 말해 2주일가량 국회 공전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지난달 10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현재 시.도지사 중에서는 대통령감이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허리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국회에서는 종종 야당 의원들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총리는 여당 내에서도 종종 불만을 샀다. 지난 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청강연에서는 "지금이 (대통령의) 측근이나 사조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발언을 했다가 대통령 측근인 염동연(열린우리당) 의원으로부터 "총리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정치권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광복 이후 최대 실세 총리로 총리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을 가장 잘 수행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이 총리는 정쟁을 불러일으키고 막말을 하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새로운 총리상을 보여 줬다"며 "과거 대독(代讀)총리를 뛰어넘어 해독(害毒)총리"라고 비판했다.

국민이 겪는 고통과 이 총리가 느끼는 경제 현실이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총리는 이와 관련, "국민의 정부 말기 때 돈이 많이 풀리고 가계 대출도 늘어 거품이 있었다"며 "(지금은) 전체적으로 보면 서민들의 생활이 흥청망청하지는 않지만 안정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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