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박물관 순례(4)서독「로만·게르만」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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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물관 건물이 종교적 신전을 연상케하거나 어딘지 무거운 분위기로 억누르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낡은 방식이다. 오늘날의 합리주의적인 박물관 운영은 그 기본적 시설, 즉 건물부터 새로운 감각으로 구상되고 있다.
그것은 대중이 박물관에 접근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박물관이란 최소한 민주적인의도로 설립되는 기구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대중들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들게 하고, 그래서 창조적 분위기에 젖는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관람객의 대다수는 대략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 겨우 짐작할 뿐, 그것이 지닌 진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데 문제의 발단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서독을 비롯한 북구의 몇몇 박물관에서 현저히 엿보이고 있다.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은 과거의 모뉴멘틀한 건축에 비하여 아주 명쾌하고 균형감을 주는 건물이다. 68년에 사방을 유리로 툭튀워서 건립한 이 현대미술관은 도서관 음악당등과 더불어 이웃해 위치함으로써 문화센터 구역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을 일상 공간처럼 생활체험적으로 꾸며서 다각적인 이해를 도모한 의욕적인 건축으로는 서독 쾰른의 로만게르만박물관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박물관은 1974년 계관하자마자 매우 호평을 받았으며 2개월 동안에 무려 20만명의 관람객이 붐볐다.
2차대전후 파괴된 도시를 정비하던중 노출된 옛 로마시대 유적 위에 세운 이 박물관은 비록 고고학적 유적·유물임에도 매우 평이하고 참신한 전시 시설로서 단연 첫손 꼽힌다.
도심지의 기차역 및 성당과 나란히 위치한 이 박물관은 앞뜰이 역전 광장이자 노천의 카폐테리아. 따라서 박물관건물의 처마 밑을 개방된 회랑 전시장으로 삼았고, 거기에다 석조물과 토기 등의 일부를 고정 전시하고 있어서 박물관이 문닫고 있는 시간에도 항시 유물에 접할 수 있다.
박물관 건물은 나지막한 3층에 불과하지만 맨 밑바닥에는 로마시대의 타일 모자이크가 그대로 깔려 있고, 다른 한 벽면에는 모뉴망유구를 실물 그대로 복원해 붙여 놓음으로써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보는 각도를 달리하여 감상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맨위층의 넓은 전시공간에는 성벽의 흥옛돌과 옹성도 일부 복원해 놓고 당시 시가지의 모습을 추정해 미니처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유물·유적·모형도등이 하나로 연관지어 보인다.
뿐더러 곳곳에 오디오 비주얼을 설치, 진열품의 발굴상황이라든가 문화사적 해석을 해주고 있으며 작은 공예품의 진열장 하단에는 서랍이 있어 거기에 관계자료를 기록한 카드를 비치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특징은 토기와 석기등의 형태론적 연구를 반영하기 위한 고고학적 진열에 역점을 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방법은 소수학자의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고 일반에게는 난해하고 매력없게 마련이므로, 새로운 환경적 전시를 통하여 현대감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당초 이 건물의 설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80명의 안이 응모 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루레케」의 설계가 채택된 것은 곧 유적의 재현과 생활공간화 등 현대적 박물관으로서의 어프로치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70년대 이후 박물관의 신축이 급증하고 있는데, 과연 유물·유적을 올바로 해석하면서 건물을 설계해 오는지 깊이 반성할 문제다.
이종석 <계간미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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