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배 침몰 알고도 구조 안 해 … 부작위에 의한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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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박직 승무원 15명에 대한 결심공판이 27일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법원 앞에서 피고인들의 법정 최고형 구형을 촉구했다. 이날 검찰은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1등항해사 강원식, 2등항해사 김영호, 기관장 박기호씨 등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세월호의 총 책임자로서 침몰 원인을 제공했고, 승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면 안 된다는 법적 의무를 어긴 채 아무런 구조조치 없이 선원들과 함께 퇴선했다. 피해 발생의 가장 직접적이고 무거운 책임이 있다.”

 검찰이 27일 이준석(69)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1등항해사 강원식(42)씨 등 승무원 3명에 대해서도 역시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의 이날 구형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세월호가 침몰할 것과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 중인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도 ▶퇴선 명령 등 가능한 구조조치를 하지 않아 승객 304명을 숨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해 왔다. 승무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해 결과 발생을 막을 수 있음에도 의무를 다하지 않아 결과가 일어난 만큼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되는 특정한 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의 부작위 범죄에 있어선 고의성 입증이 관건이다. 법원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사례는 드물다. 그만큼 법리가 까다롭고 입증이 쉽지 않다. 1991년 조카(당시 10세)에게 위험한 둑 위를 걷게 한 뒤 저수지에 빠지자 구하지 않은 삼촌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97년엔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것이 확실시되는 환자를 퇴원시킨 가족과 의사에게 같은 혐의가 인정됐다. 반면 326명이 희생된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고의 경우 선장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고발생을 예견한 채 과적 운항을 했을 가능성은 작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대신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해 금고 2년6월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선장 등의 살인혐의 인정 여부는 침몰 당시의 상황과 관련자 진술 등에 대한 재판부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선장 등이 세월호에서 탈출할 당시 ‘승객들이 숨질 수도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440여 명을 차례로 퇴선시키면 선원이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우려해 먼저 탈출했다’는 점을 고의성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승무원들의 법정 진술은 엇갈리고 있다. 이 선장과 일부 승무원은 “이 선장이 퇴선 명령을 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방송이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러나 조타수 박경남(59)씨는 “책임을 피하려고 선장 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재판부가 이 선장 등의 ‘퇴선 명령’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살인죄 유·무죄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가 살인죄 적용이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이 선장 등은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선박) 위반 혐의를 예비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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