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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담보대출 거품 … 경제 타격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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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게시판엔 지난 20일 'A은행이 35평형에 대해 최고 2억1000만원을 빌려주겠다'는 주택담보대출 전단이 나붙었다. 이틀 뒤 이 전단은 같은 평형의 대출 가능액을 2억4800만원으로 올린 B생명보험사의 전단으로 교체됐다. 또 하루가 지나자 은행이 100% 출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한 상호저축은행이 2억8700만원까지 대출해주겠다고 나섰다. 이 아파트 주민 김모(40)씨는 "아파트 값은 뛰고 금리는 낮아지는 데다 사방에서 서로 많이 빌려주겠다고 하니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바심이 든다"고 말했다.

오는 8월 정부의 부동산시장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금융회사들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이 오히려 가열되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는 물론 캐피털.저축은행들까지 나서 앞다퉈 금리를 내리고 대출한도를 높이고 있다. 담보대출비율(LTV) 인하 등 구체적인 규제방안이 나오기 전까지 주택대출을 최대한 늘려놓기 위해서다. 부동산 대책 발표 때까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실태 점검을 연기키로 한 금융감독 당국의 결정도 이 같은 대출 세일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 대출 경쟁 전방위 확산=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엔 지난주 한 국책은행 강서지역본부가 보낸 주택대출 안내장이 집집마다 배달됐다. 타행대출을 받고 있는 신규 고객에 한해 대출 설정비를 전액 면제하고 최저 연 4.6%로 집값의 60%까지 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은행의 공식적인 최저대출 금리(연 5.1%)보다 0.5%포인트나 낮은 조건이다. 타행대출을 갈아타는 고객에게 금리 혜택을 주지 말라는 금융감독원의 경고를 국책은행부터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과 보험사는 집값의 60%, 저축은행 등은 70%로 제한돼 있는 담보대출비율 상한도 유명무실하다. LTV를 아예 무시하거나, 거래 없이 형성된 호가 최고액을 기준으로 LTV를 계산하는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S손해보험사는 최근 서울시내의 한 25평형 아파트 단지에 2억2800만원까지 빌려주겠다는 전단을 뿌렸다. 이 같은 금액은 이 아파트의 평균 시세(3억원)나 최고가(3억1100만원)의 72~76%에 달한다. H보험사는 단지 입구에서 '3억원짜리 집은 2억4000만원, 5억원짜리는 4억원까지 대출해준다'는 전단을 나눠줬다.

서울 강남 세곡동에선 지난주 '집값의 80%까지 연 6~9.8% 대출, 후순위도 가능'이라는 문구가 쓰인 한 캐피털 회사의 홍보용 차량이 골목을 누볐다. 서울 목동 등에는 타금융권과의 연계를 통해 집값의 110~120%까지 빌려준다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서울 강남과 송파, 경기도 용인에서도 '선순위로 집값의 90%, 후순위 포함해 95%까지 대출해준다'는 전단이 나돌아다닌다.

대출받은 뒤 3~6개월간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미끼금리'도 여전하다. 금감원이 지난 5월 시중은행들에 주택대출 과당경쟁을 자제하라고 촉구한 뒤 미끼금리를 폐지했거나 할 예정인 곳은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등 두 곳뿐이다. 하나은행은 5월 말 6개월간 0.4%를 깎아주는 서비스를 없앴고, 신한은행은 다음달부터 0.3%의 초기 감면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나머지 은행들은 여전히 최고 연 0.7%포인트의 금리 할인을 제시하며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일본식 버블 우려 높아져=주택대출 경쟁은 저금리와 함께 집값 상승→대출한도 상승→가수요 확산이라는 악순환 고리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가계대출 담당자는 "주택대출 수요자가 40대 중산층에서 20대 신입사원까지 확대되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이 정부 대책을 불신하며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도 지난 24일 국회 정무위에서 "개인적으로는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금융회사들이 공급하는 주택대출 자금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정부 내에서 아직 소수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 "정부와 금융통화위원회 모두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외국어대 임기영 경제학 교수는 "은행에 이어 보험사와 저축은행까지 나서고 대출한도와 집값의 차이가 점점 좁아지면서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상황과 비슷해지고 있다"며 "8월 강도 높은 주택투기 억제책이 나올 경우 가계와 은행이 동시에 타격을 받아 후유증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동호.나현철 기자<dongho@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가계대출이 60%…올 은행대출 편중 심화

은행대출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편중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 은행이 가계에 빌려준 돈은 10조1512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59.8%를 차지했다. 이 기간 중 기업대출은 6조8312억원으로 40%에 못 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기업대출이 11조8595억원, 가계대출이 9조7004억원으로 기업대출이 더 많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 최근 더욱 심화하고 있다. 지난 4월 은행의 기업.가계 대출액 6조1505억원 가운데 가계대출은 3조1058억원으로 전체의 50.5%였으나 5월엔 총 5조9040억원 가운데 4조1839억원으로 70.9%에 달했다.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은행대출액 2조8225억원 가운데 가계대출이 2조원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가계대출 확대 경쟁을 벌이면서 편중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가계대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가 다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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