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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6.25 와중, 미국은 이승만 버리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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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책과함께, 408쪽, 1만6800원

▶ 한국전쟁을 다뤄 인기를 모았던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6.25'라는 표백된 숫자로 불리기도 하는 한국전쟁. 그동안 국내 학계에선 주로 정치학의 연구대상이었다. 전쟁이 현대 한국정치를 규정짓는 결정적인 변수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어느 세력, 어느 권력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전쟁에 대한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미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 한 현대사 연구자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권력에 길든 기존의 '한국전쟁론'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한국전쟁을 보여준다. 학계에선 이미 다뤄진 내용들이지만 독자들에겐 충분한 자극이 된다.

저자는 우선 책의 절반 정도를 전쟁의 기원에 할애한다. 전쟁의 기원에 대한 시각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외세에 의해 발발했다는 '외적 기원론'과 국내 정치세력의 대립이 폭발한 것이라는 '내적 기원론'이다. 저자는 각각의 한계를 비교적 공정하게 지적한다. 대신 저자는 외세에 의한 분할점령을 전쟁의 필요조건으로 든다. 물론 이것만으론 전쟁 발발을 설명할 수 없다. 외세가 아무리 분단을 강제해도 내부에 호응세력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국내엔 분단이 더 좋겠다고 판단하는 세력들이 있었고, 그들이 일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가 분단과 전쟁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전쟁 과정의 서술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이 소개된다. 미국이 전쟁 중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마련한 '에버 레디(ever ready)' 계획이 대표적이다. 그가 전쟁 통에도 권력강화를 위해 혈안이 되자 미국은 군부를 종용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지도자가 없다는 이유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 계획엔 당시 영관급 장교였던 박정희도 끼어 있었다. 결국 그는 5.16 쿠데타를 통해 변형된 '에버 레디'계획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중국군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린 인해전술이 과장됐다는 설명도 나온다. 중국군은 장진호 전투에서만 한 차례 이와 비슷한 전술을 썼을뿐 주로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중국군이 인해전술을 썼다고 굳어진 것은 왜일까. 저자는 장진호 전투 경험과 함께 중국군을 '짱꼴라'라고 비하하는 서양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저자는 또 우리들이 흔히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지적한다. 한국을 한반도내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한 우리 헌법이 국제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유엔이 1948년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만' 한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38선 돌파 후 정부가 임명한 이북 5도 도지사들은 유엔군 사령관에 의해 보기좋게 쫓겨났다. 이는 지금도 우리에겐 심각한 문제다. 만약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그 지역을 우리 정부가 통치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을 과감하게 해본다. 만약 북한 지역을 미국이 점령하고 남한을 소련이 점령했다면? 만약 좌우익의 통합을 이뤄낼 유일한 인물이었던 여운형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폭탄을 사용했다면?

자유분방하게 터져나오는 상상들은 역사학자로는 용납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대중적 교양서를 쓰기로 작정했다. 따라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던져보는 질문에 굳이 학문적인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에 답해봄으로써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한국 현대사가 전공이다. 한 학기 내내 한국전쟁을 주제로 진행하는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 주목받는 이색 강의로 꼽히기도 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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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읽는 한국전쟁(길광준 엮음, 예영커뮤니케이션, 2만원)=기자, 사진병들이 찍은 희귀 사진 1600여 컷으로 해방 이후 남북 대치부터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한국전쟁을 조망.

▶ 그들이 본 한국전쟁 1(중국 해방군화보사 글.사진, 노동환 외 옮김, 눈빛, 2만원)=중국 인민지원군의 한국전 파병에서 철수까지를 중국 측에서 본 200여 컷의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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