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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류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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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엊그제 외신은 충격적인 보도를 전한다. 지금 지구상에서는 2초마다 한명꼴로 성병환자가 생기며 현재 성병에 감염돼 있는 사람만도 3억∼4억명이나 된다는 한 인도 의학자의 보고다.
정말 그렇다면 10명에 적어도 한명이 성병환자다. 여기에 어린이 등을 제외하고 성인남녀만 따질때 그 비율이 얼마나 높아질지 아찔하다.
한때 스웨덴의 신문들은 『오늘 저녁에도 1백7명의 스웨덴 국민들이 매독에 걸릴 것입니다』라는 경고문을 실었다. 불과 8백만인구에 4만1천명의 매독환자가 발견된데 놀란 범국민적인 성병퇴치운동의 하나였다.
한때 중공은 「성병대륙」이었다. 60년대 중공의료진은 시골장터마다 돌며 농민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매독에 걸렸다고 해도 당신 잘못이 아니고 수치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쉽사리 나을 수 있는데도 계속 걸려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뿐이다.』
미국의 매독환자 증가율은 60년대의 8%에서 70년대엔 16%로 늘어났다. 해마다 2백만명의 새로운 임질환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성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성문란 등 사회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병을 숨기려는 마음도 한가지 큰 원인이 된다. 옛날엔 이 병의 진원지를 서로 다른 나라에 미루기조차 했다.
15세기말 프랑스와 나폴리왕국의 전쟁이후 온 유럽엔 매독이 만연했다. 베로나의 의사며 시인인 「G·프라카스토로」가 『프랑스병에 걸린 시필리우스』라는 시를 써서 이 병이 프랑스병임을 주장했다.
그 이후 병명은 시필리스(Syphilis)로 정착됐으나 프랑스에선 이탈리아병으로, 영국은 프랑스병으로, 러시아는 폴란드병으로, 인도에선 포르투갈 병이라고 불렀다.
웨스터대사전은 성병을 나타내는 『프랑스병(French disease)』이 고어임을 명기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선 예부터 화류병이라고 불렀다.
1940연대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성병은 박멸되나 싶었더니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10대의 감염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었다.
각국의 성병퇴치대책은 매우 신중하다. 미국에선 감염을 신고하면 비밀보장 하에 무료로 치료해 준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혼전의 감염사실을 「고백」 안해도 된다. 프랑스에선 고교생에 대한 시청각교육으로 사전예방에 주력한다.
의사들도 성병에 대해서만은 매우 정중하고 진지하게 대한다.
근치가 어렵다고 하지 않고 환자가 협조만 해준다면 틀림없이 낫는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유달리 수치심이 강하고 도덕감이 높은 우리에게 보사부의 최근 대책은 매우 급진적이다. 감염사실을 직장에 알리고 결혼시에 진단서를 교환하라는 얘기는 병을 더 숨기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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